한국경쟁 섹션 - 박준호 감독의 <3670>
<3670>은 게이이자 탈북 청년 ‘철준’(조유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부모를 북에 남겨두고 남으로 넘어온 철준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탈북자 친구들 몇 명 말고는 (남한) 친구도, 연인도 없이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그는 어쩌다 밤을 함께 보낸 남자를 통해 게이 커뮤니티 SNS에 가입하게 되고,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영준’(김현목)은 그룹의 은어와 문화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며 철준의 유일한 남한 친구이자 베프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철준은 영준을 통해 더 많은 친구와 장소들을 경험하며, 20대 청년이 누릴만한 평범한 행복에 대해 배워 나간다.
<3670>은 단편 <은서>로 주목받았던 감독 박준호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탈북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편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 역시 탈북자, 특히 탈북한 게이라는 소수에 소수를 더한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조명한다. 영화의 제목, ‘3670’은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7시에 만나자는 뜻을 가진 은어다. 영화의 제목은 낙원동을 기반으로 하는 게이 커뮤니티의 상징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철준이 이 공간, 혹은 커뮤니티로의 입성을 통해 새로운 자아와 동료들을 발견하는 순간을 함의하기도 한다. 철준은 영준과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지만, 대부분의 20대 청년들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한동안은 말싸움으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며 우정과 사랑을 경험한다.
영화는 이전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퀴어 영화들과는 달리,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편견보다 정체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정과 연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전의 퀴어 영화에서도, 상업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탈북자와 게이라는 두 겹의 소수성을 가진 캐릭터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선입견을 지목하는 영화의 문제의식과 두 종류의 특정한 커뮤니티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서사적인 풍성함을 더 한다. <3670>은 단연코 한국경쟁 섹션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 이일하 감독의 <호루몽>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2015), <카운터스>(2018) 등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일조선인 사회와 일본 내에서의 혐오 이슈를 조명해 왔다. 그의 신작 <호루몽> 역시 재일교포 3세이자 인권 운동가, 신숙옥을 통해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문화와 미디어의 무분별한 보도를 비판한다.
영화의 주인공, 신숙옥 여사는 재일 교포 커뮤니티에서도, 일본 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사업가로 성공해 유망한 사회인이었던 그녀는 2000년 도쿄 시장 이시하라의 극우 망언을 계기로 사회 인권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혐한 헤이트 스피치에 항거하는 ‘노리코에('극복하는'이라는 뜻)’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관련 법안을 이끌어냈다. 이 활약으로 그녀는 일본 극우의 표적이 되었지만, 재일 교포와 한국인들,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모든 민족과 지역 주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목소리를 조명한다는 것에 덧붙여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가 선택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강인하고 쾌활하며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다. 이들은 제도권과 부당(不當)에 맞서 싸우는 전사이면서 탁월한 유머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엔터테이너들이다. 따라서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에는 정보와 현실을 넘어선 특유의 따뜻함과 감동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번 <호루몽> 역시 그의 스타일과 견고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수려한 다큐멘터리이다. 아니,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 뛰어났던 이전 작품들보다도 더욱 진일보한 인물 다큐멘터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은 영화의 주인공인 신숙옥 여사와의 GV가 수반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전주로의 여행을 준비할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