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이름이 ‘빨래터’인 이유…서울 한 복판에 있던 생활의 현장[청계천 옆 사진관]

4 days ago 17

백년사진 No.173

지루한 장마에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지금도 이리 눅눅하고 힘든데, 옛날에는 더했을 겁니다. 특히 빨래는 주부들에게 큰 숙제였을 테지요. 어디서 빨래를 했을까요?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는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이 ‘빨래터’인 곳이 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는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이 ‘빨래터’인 곳이 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1926년 7월 13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산청동의 빨래터”입니다. 아마 삼청동을 잘못 쓴 것 같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빨래터가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빨래 바구니 옆으로 아이가 서 있습니다. 엄마가 일이 끝나야 같이 놀아 줄 텐데 말입니다.

삼천동의 빨래터. 1926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

삼천동의 빨래터. 1926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

위 사진을 자르니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빨래하는 엄마의 일이 얼른 끝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 사진을 자르니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빨래하는 엄마의 일이 얼른 끝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1926년은 어떤 해였냐 하면 4월 25일에 순종이 창덕궁에서 승하했고 6월 10일 인산일에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국상을 치른 후 두 달 뒤 사진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을 택해 미뤘던 빨래를 하는 모습일겁니다. 슬픔과 별개로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요. 실제로 이 사진이 게재된 후 1주일 후인 1926년 7월 18일자 신문에는 3년 만에 물 난리가 난 한강 주변과 인사동 사진이 게재됩니다.

지금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카페와 유명 브랜드 매장들로 관광객들이 북적이지만 100년 전에는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스케이트를 타고 빨래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몇 번 이 코너를 통해 삼청동의 옛모습을 다뤘던 적이 있습니다.

삼청동 빨래터 이외에도 이 부근은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따라 빨래터가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지금도 종로구 원서동에는 종각역이나 안국역에서 탈 수 있는 마을 버스 정류장 이름이 빨래터입니다. 김금희 작가의 스테디셀러 소설인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도 나오는 그 원서동 빨래터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다룬 소설인데, 서울 한복판 공간의 이야기와 역사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창덕궁 담 끝에 빨래터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창덕궁 담 끝에 빨래터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원서동 빨래터에 가면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창덕궁 신선원전 외삼문 오른쪽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시대 궁궐 궁인들과 일반 백성들이 빨래를 하던 장소이다. 길이는 약 4.8미터, 너비는 약 2.4미터로, 창덕궁 북서쪽의 담장 바깥으로 흐르는 작은 소하천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하천 위로 다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성벽을 연결하였다. 창덕궁 안에 풍부한 수원(水源)이 있어 이 하천의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위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오른쪽에 공간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오른쪽에 공간이 있습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어른 4~5명이 앉아서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어른 4~5명이 앉아서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주인공인  영두와 친구들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던 길도 저 철조망이 아니었을까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주인공인 영두와 친구들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던 길도 저 철조망이 아니었을까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빨래터로 몇 장의 사진을 더 찾아보았습니다. 같이 감상해 보시죠. 백년사진이었습니다.

[本報 단독입수 구한말사진 90여점 첫공개] `(英기술고문 포스터 배럼 촬영)종로 개울서 빨래1907년 한강 지류인 한 개천에서 아낙네들이 한가롭게 빨래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개천의 빨래터가 북악산에서 발원, 서울 종로구 청운동과 삼청동을 지나 중학동으로 이어지는 중학천변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에는 청계천 황학천 등 9개의 개천을 포함, 수많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개공사로 덮인지 오래돼 과거 실개천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흘렀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동아일보 1997년 10월 30일자 게재.

[本報 단독입수 구한말사진 90여점 첫공개] `(英기술고문 포스터 배럼 촬영)종로 개울서 빨래1907년 한강 지류인 한 개천에서 아낙네들이 한가롭게 빨래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개천의 빨래터가 북악산에서 발원, 서울 종로구 청운동과 삼청동을 지나 중학동으로 이어지는 중학천변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에는 청계천 황학천 등 9개의 개천을 포함, 수많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개공사로 덮인지 오래돼 과거 실개천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흘렀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동아일보 1997년 10월 30일자 게재.

아낙네의 빨래터와 어린이의 놀이터로 사용된  청계천 수표교 의 1900년경 모습. 현재의 청계천 2가 개천.  작자 미상.

아낙네의 빨래터와 어린이의 놀이터로 사용된 청계천 수표교 의 1900년경 모습. 현재의 청계천 2가 개천. 작자 미상.

겨우내 밀렸던 때를 한꺼번에 씻고 있다.  동아일보 DB. 1975년 3월 31일 촬영.

겨우내 밀렸던 때를 한꺼번에 씻고 있다. 동아일보 DB. 1975년 3월 31일 촬영.

수원 화홍문 아래의 빨래터(1911)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방한 당시 촬영한 사진.  화홍문 아래 평평한 암반 위에서 빨래를 하거나 천을 널어 말리는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당시 수원 주민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묻어난다. (사진 제공=독일 상트 오틸리엔 총원교구 아카이브)

수원 화홍문 아래의 빨래터(1911)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방한 당시 촬영한 사진. 화홍문 아래 평평한 암반 위에서 빨래를 하거나 천을 널어 말리는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당시 수원 주민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묻어난다. (사진 제공=독일 상트 오틸리엔 총원교구 아카이브)

봄날 같은 날씨에 녹아버린 강변… 아낙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아일보 DB. 1964년 1월 촬영 .

봄날 같은 날씨에 녹아버린 강변… 아낙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아일보 DB. 1964년 1월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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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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