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선우용여·92세 이용만 전 장관
유튜브 채널 열자 젊은 구독자 급증
할머니·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듣듯
연륜 담긴 인생조언 유쾌하게 풀어
늦은 나이란 없다. 70·80대, 심지어 90대에도 누구보다 젊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국내 ‘시니어 유튜버’의 활약이 눈부시다. 은퇴 후 소비와 여가를 즐기고 생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늘면서 소셜미디어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등으로 유명한 배우 선우용여(80)는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순풍 선우용여’를 개설했다. 약 두 달간 동영상 28개를 올렸고, 구독자는 6월 중순 현재 28만명을 달성했다. 수많은 방송에서 활약했던 거침없는 입담, 자유롭게 누리는 호텔 조식, 아침 운동, 해외 여행을 즐기는 이상적인 노년 라이프가 주요 콘텐츠다. 50년 지기 배우 전원주(86)와의 근교 여행, 10년 전 사별한 남편과의 추억, 남편이 잘못 진 빚 보증을 해결하느라 다사다난했던 시절 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현재까지 올라온 영상은 전부 100만 조회수를 넘겼다. 특히 가장 인기를 끈 영상 ‘매일 벤츠 몰고 호텔 가서 조식뷔페 먹는 81세 선우용여’엔 젊은 세대의 감상평 댓글 4400여 개가 도배됐다. ‘나이 들어도 돈 있고 건강하고 저렇게 살고 싶다’ ‘80세 여성 중에 제일 멋있다’ ‘말씀하시는 게 하나도 올드하지 않고 센스 있다’ 등 유쾌한 노년의 선우용여를 ‘닮고 싶은 어른’으로 표현한 글이 많다.
지난달 11일엔 1933년생, 올해 92세인 전 재무부 장관 이용만이 유튜브 채널 ‘이용만 해주세요’를 개설해 화제를 모았다. 자칭·타칭 ‘국내 최고령 현역 유튜버’다. 자신이 졸업한 고려대 교정에서 20대 후배들에게 신조어를 배우는가 하면 6·25 전쟁 때 월남해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던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정희 정부 당시 재무부 과장으로 일하며 경제개발 실무를 담당했던 일화도 있다. 그는 이후 1980년대 신한은행·외환은행 행장을 각각 지냈고, 1991~1993년 노태우 정부에서 제35대 재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구독자 수는 한 달여 만에 2만명을 넘겼다. 시청자 중 18~34세 젊은층 비율이 68.5%였다. 9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꼿꼿한 몸의 자세와 또렷한 눈빛, 명료한 발음과 기억력 등이 시청자들 호기심을 자극했다. 댓글엔 ‘유튜브도 이제 레드오션’ ‘피난민 출신 전직 재무부 장관 92세 선생님을 어떻게 이기나’라는 반응도 잇따랐다. 이들에 앞서 이미 일반인 할머니 박막례(78), 패션 디자이너 출신 ‘밀라논나’ 장명숙(73) 등이 유튜브를 통해 소통하며 100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건강하고 젊게 사는 이른바 ‘랜선 조부모’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인생 조언을 구하는 게 새로운 힐링 콘텐츠가 됐다.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그랜플루언서’라는 신조어로 이들의 활약에 주목했다. 조부모를 뜻하는 영단어 ‘그랜드패어런트’(grandparent)와 소셜미디어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합친 말이다. 2023년 액티베이트 HQ 조사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위 그랜플루언서의 구독자 중 74%가 18~34세였다.
노년의 연륜과 청년의 감각이 일으킨 시너지 효과도 있다. 앞선 국내 실버 유튜브 콘텐츠는 대부분 기획·편집 등의 제작 실무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 ‘순풍 선우용여’는 홍진경·이지혜·노홍철 등의 유튜브를 만든 허니비 스튜디오가, ‘박막례 할머니’는 박막례의 손녀인 김유라 PD가 콘텐츠 기획과 편집을 전담한다.
앞으로는 기술 발전과 노년층의 자기표현 욕구가 더해져 다양한 시니어 유튜버가 더 많아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시니어 트렌드’ 저자인 최학희 시니어라이프비즈니스 대표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70대까지는 은퇴 라이프를 즐기다가 동년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고독감을 느껴 콘텐츠 생산 욕구를 느끼는 분들도 있다”며 “기업 임원, 교사·교수 출신 등 계속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분들, 배우려는 분들이 많고 직접 촬영·편집하는 분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