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역삼동 조선팰리스 호텔 그레이트홀.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 사과를 위해 어두운 표정으로 등장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날 사과문을 낭독하면서 세 차례 허리를 숙였다. 2024년 3월 회장직에 오른 정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직접 사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많은 분이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끼셨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제 잘못”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일주일 전 그룹 회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음에도 다시 사과에 나선 것은 스타벅스를 향한 불매 운동이 신세계그룹 전반의 경영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과문 발표 직후 신세계그룹은 논란과 관련해 스타벅스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핵심 의혹에 대한 실질적인 해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마케팅의 결제 보고는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 등 4단계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5월 18일에 탱크 데이는 안 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세계 측 설명이다. ‘책상에 탁’ 등 문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없었다. 기안이 담긴 첨부파일을 열지 않고 결재한 사례도 확인됐다. 내부 리스크 관리 체계의 결함이 드러난 대목이다.
진상 조사에도 신세계 측은 임직원의 고의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마케팅팀 직원 5명 중 3명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게 신세계 측 설명이다. 실질적인 고의성 여부 판단은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진행 중인 사법기관의 수사에 맡겼다.
정 회장의 사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스타벅스의 파트너와 점주들의 어려움을 언급한 부분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반면 5·18 공법3단체와 5·18기념재단은 정 회장이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이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비판했다. 5·18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는 걸 에둘러 내비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 회장이 사과문을 약 4분간 읽은 뒤 질의응답을 거부하고 행사장을 빠져나간 것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탱크 데이’나 ‘책상에 탁’ 같은 민감한 문구가 그대로 나간 걸 단순 실수로 돌리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 오너의 정치적 성향이 노출되면서 일부 임직원이 동조하는 기업 문화가 생겨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 등 관련 임직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찰은 정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에게 모욕 또는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선불식 충전 카드 잔액 환불 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약관에 따르면 원래 충전 잔액의 60% 이상을 사용해야 환불받을 수 있다. 5·18 폄훼 논란 이후 환불 요구가 빗발치자 한시적으로 사용액과 상관없이 전액 환불해주기로 했다.
오형주/류은혁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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