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시끄러웠지만 결과는 창대하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예능 '운명전쟁49'가 그렇다.
방송 활동을 중단한 논란의 MC, 순직 영웅을 미션 소재로 삼은 비윤리 논란, 조작 의혹까지 '운명전쟁49'는 공개 전부터 공개 후까지 그야말로 논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웬만한 작품이라면 여론의 뭇매에 조기 퇴출을 걱정해야 할 만큼 험로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고, 해외 리메이크 버전 개발을 논의한다는 말이 공식적으로 나올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공개 전부터 터진 '겹악재'
'운명전쟁49'는 신점, 사주, 타로, 관상 등 다양한 점술 분야를 대표하는 운명술사 49인이 각종 미션을 통해 겨루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무속과 점술을 전면에 내세운 이른바 '샤머니즘 서바이벌'이라는 전에 없던 콘셉트가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정작 시선을 먼저 잡아끈 건 콘텐츠 자체가 아니었다. MC '운명사자' 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방송인 박나래 때문이었다.
박나래는 촬영 당시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프로그램 공개를 앞두고 전 매니저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터졌다. 전 매니저 측은 박나래를 특수상해·명예훼손·횡령 혐의로 고발했고, 박나래 측은 공갈미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맞고소하며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불법 의료 시술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박나래는 방송 활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였다.
여론은 박나래를 편집하라는 요구로 들끓었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 콘텐츠는 자막, 번역 등을 위해 사전에 편집해 납품을 완료해야 한다는 점, 대규모 서바이벌 예능 특성상 특정 인물을 별도로 편집하기 쉽지 않았다는 특성 때문에 박나래는 편집 없이 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월11일 공개된 2화에서는 사인을 맞히는 미션이 방송됐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표현이 "과하다"며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해당 발언을 다시 짚은 방송인 전현무가 소속사 SM C&C를 통해 사과했고, 제작진 역시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 결국 해당 장면의 재편집을 결정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역대 1위'
하지만 수치는 전혀 달랐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운명전쟁49'가 공개된 2월 디즈니플러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약 407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월 317만명 대비 28.1% 급증한 것은 물론, 전년 동월(257만명)과 비교하면 58.3%나 늘어난 수치다. 이는 디즈니플러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무빙'이 공개됐던 2023년 9~10월 이후 처음으로 400만명을 돌파한 기록이다.
신규 설치자 수 역시 66만명으로 OTT 앱 1위에 올랐다. 사상 처음으로 넷플릭스(51만명)를 앞질렀다.
'운명전쟁49'에 대한 관심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유력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달 단독으로 "'운명전쟁49'가 한국 디즈니플러스에서 시청률 기록을 경신했다"며 "2023년 '무빙'이 세운 역대 최고 기록을 뛰어넘었다"고 보도했다. 버라이어티는 이어 "개봉 후 첫 12일 동안 누적된 시청자 수치를 기준으로 2026년 디즈니플러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작 중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다"면서 "디즈니플러스가 추가 시장 확보를 위해 해외 리메이크 작업에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OTT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으로도 '운명전쟁49'는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1위를 이어갔다.
출연했던 무속인들의 예약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화제였다. 결승전에 오른 무속인 이소빈은 SNS를 통해 "2029년 예약까지 마감됐다"고 알렸고, 또 다른 무속인 설화도 "예약 리스트가 2만명을 넘겼다"며 "2027년 예약이 모두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윤대만 역시 현재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예약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다. 오컬트 서바이벌이 실제 무속 시장까지 흔든 셈이다.
드라마 제작비의 5분의1, '가성비 최강' 콘텐츠
흥행 자체도 놀랍지만, 이 흥행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제작비 대비 성과다. 디즈니플러스는 한국 시장에서 다수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선보여왔다. 영화에서만 활동하던 몸값 비싼 흥행 배우, 연출자들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에 출연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운명전쟁49'와 같은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 작품들의 회당 제작비는 통상 드라마 평균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특히 대작으로 분류되는 경우 총제작비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운명전쟁49' 같은 예능 서바이벌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스타급 배우 캐스팅이 없고, 거대 세트나 특수효과도 필요 없다. 일반 서바이벌보다 출연자가 많긴 하지만, 대다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점술 전문가들이다. 업계에서는 '운명전쟁49'의 제작비 규모를 드라마 평균의 5분의1, 대작 드라마 대비로는 10분의1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 유입 효과만큼은 역대 1위 드라마를 뛰어넘었다. 투자 대비 수익(ROI) 관점에서 본다면 압도적인 숫자다. 이번 성공이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들였나
'운명전쟁49'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포맷이었다. 무속과 점술을 서바이벌의 문법으로 구현한 것은 국내외를 통틀어 전례가 없었다. 신점, 사주, 타로, 관상, 족상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일한 미션 앞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명을 읽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션 설계도 핵심이었다. 발바닥만 보고 노숙 경험자 맞히기, 태아 성별 맞히기, 돈벼락과 날벼락 맞은 사람 구별하기, 서울대생 찾기 등 직관적이면서도 검증 가능한 미션들은 "진짜일 수도 있다"는 기대와 "과연 맞힐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동시에 자극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결과가 적중하는 순간의 소름은 회당 수십만명이 실시간 반응을 쏟아내는 화제성으로 이어졌다. 반신반의하던 이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2라운드의 1:1 대결 '기의 전쟁'은 또 다른 매력을 더했다. 무속인들은 서로 점을 봐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상대의 과거와 상처를 들여다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포커페이스가 무너지고 눈물이 흐르는 장면은 단순한 적중 게임을 넘어 감정선을 건드리는 서사로 변모했다. 예능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인간 드라마가 완성된 것이다.
출연진의 다양성도 흥미를 높이는 요소였다. 참가한 49인은 3대째 무속인 가문 출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 같은 정통파부터 피겨 선수·댄서 출신, 트랜스젠더 무당, 카이스트 출신 역술가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다양한 배경과 접근법이 충돌하는 장면 자체가 콘텐츠였다.
해외 반응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특유의 무속 문화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이국적 매력으로 작용했다.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K정신과', 'K샤머니즘'이 세계 시청자의 관심을 끈 셈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운명전쟁'과 비슷한 포맷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수년 전부터 방송가에서 기획됐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보류돼 왔다"며 "방송사가 아닌 글로벌 플랫폼에서 방영돼 표현이나 연출적인 부분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 여기에 색다른 미션들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인기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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