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사망)의 ‘파일’을 두고 미국 정계에 파장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엡스타인이 미국 내·외를 아우르는 여러 거물과 절친한 사이였음을 보여주는 편지와 사진들이 공개됐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엡스타인의 7층짜리 호화 저택 내부와 그가 63세 생일을 맞아 영화감독 우디 앨런,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 등 여러 유명 인사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우디 앨런은 엡스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웃집에 사는 아내 순이와 나는 저녁 식사에 여러 번 초대받았고 항상 수락했다. 항상 흥미로웠다”며 “저녁 식사마다 정치인, 과학자, 교사, 마술사, 코미디언, 지식인, 언론인 등 여러 분야의 흥미로운 사람들이 모였다”라고 썼다.
앨런은 이 저택에서의 만찬을 1931년 작 영화 ‘드라큘라’에 비유하면서 “몇몇 젊은 여성이 시중을 들어 (드라큘라 백작 역을 맡은 배우 벨라 루고시가) 젊은 여성 뱀파이어에게 시중을 들도록 하는 드라큘라 성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덧붙였다.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아내는 엡스타인에게 “당신의 호기심에는 한계가 없다”라며 엡스타인을 “사람 수집가”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많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같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며 “건강하게 오래 사시고 우리 모두와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의 식사를 더 오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이 밖에도 촘스키와 그의 아내, 부동산 재벌 모티머 주커만, 일본 출신 사업가이자 전 매사추세츠 공대(MIT) 미디어랩 소장인 이토 조이치, 물리학자 로런스 M. 클라우스, 하버드대 수학·생물학 교수인 마틴 노왁 등이 엡스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NYT는 전했다.
NYT가 공개한 저택 내부에는 엡스타인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롤링스톤스의 보컬인 가수 믹 재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쿠바의 전 정치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등과 찍은 사진이 진열돼 있었다.
지난 2000년 트럼프 대통령과 당시 결혼 전이었던 멜라니아 여사와 엡스타인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 사진은 원래 엡스타인의 전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도 같이 있었으나 액자에는 맥스웰은 잘린 채 놓여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사진과 함께 1달러짜리 지폐가 들어있는 액자도 놓여있었는데,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서명과 함께 ‘내가 틀렸다’라고 적혀 있다.
저택 내 그의 서재에는 소설 중년 남성의 12세 소녀에 대한 성적 집착을 다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1955년 초판본도 있었다.
이번 저택 내부 공개로 여러 거물과 친분을 맺었던 엡스타인 ‘파일’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의 ‘성 접대 리스트’를 은폐하고 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트럼프 지지층 내부에서까지 논란이 커졌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엡스타인 관련 수사 기록에 등장한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 상황에서 미 법무부는 복역 중인 맥스웰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