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교사가 수업 중에 한 발언을 몰래 녹음한 파일은 형사재판에서 증거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일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재상고심에서 검사 측 상고를 기각했다.
A씨는 2018년 3~5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피해 아동에게 수업 시간 중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공부 시간에 책 넘기는 것도 안 배웠어” “학습 훈련이 전혀 안 돼 있어” “1~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 하기만 했나 봐” 등의 말을 해 16차례에 걸쳐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의 학대 행위를 의심한 피해 아동의 부모는 아이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A씨의 발언을 녹음했고, 경찰에 A씨를 신고하면서 녹음 파일 등을 증거로 함께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2심에선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형량이 벌금 500만원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작년 1월 대법원은 몰래 녹음된 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 14조 1항에서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A씨의 발언은 특정 학생들에게만 공개됐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볼 순 없다”고 판시했다.
파기환송심 결과는 무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녹음파일 등을 전제로 한 피고인, 피해 아동 부모 등의 진술과 상담 내용 또한 녹음파일 등과 인과관계가 희석·단절되지 않은 2차적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며 “증거능력이 부정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 사실에 기재된 발언을 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날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 사건과 같이 ‘몰래 녹음’의 증거능력이 쟁점이 된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에 대한 특수교사 B씨의 학대 사건에서도 같은 결론이 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B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 용인시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해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씨 측은 아들의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B씨의 발언을 몰래 녹음한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으나, 2심은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없다며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