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은 주주가 결정할 문제…모호한 규제는 되레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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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중복상장 제한과 관련해 “자본시장이 성숙할수록 규제보다 시장 판단에 맡기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 제공

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중복상장 제한과 관련해 “자본시장이 성숙할수록 규제보다 시장 판단에 맡기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 제공

“중복상장 제한은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규제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진단을 내놨다. 리터 교수는 기업공개(IPO)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미스터 IPO’로 불린다. 그의 연구와 자료는 세계 IPO 분석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요즘 자본시장의 최대 쟁점은 중복상장이다. 금융당국은 상장회사가 종속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중복상장에 대해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 원칙을 세웠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중복상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개인 주주들은 모회사 주가 방어를 위해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리터 교수는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 불일치를 문제의 핵심으로 짚었다. 그는 모회사 주주의 중복상장 승인을 해법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강제적인 규제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고 했다. 리터 교수는 “성숙한 자본시장일수록 ‘시장에 맡기라(let the market)’를 원칙으로 삼는다”며 “한국 시장 역시 이미 그 반열에 올라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증시에 중복상장이 적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은 중복상장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 등 미국 복합기업(conglomerate)은 대체로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지 않습니다. 중복상장을 하더라도 나중에 모회사 보유 지분을 모두 처분해 완전 분리하거나, 필요한 경우엔 다시 인수합니다. 이른바 지분 분리(equity carve-out)라고 불리는 형태입니다.”

▷한국과 미국 기업의 중복상장 수요가 다른 원인이 있습니까.

“지배구조의 차이입니다. 미국 복합기업 상당수는 1980년대부터 서로 지분 관계가 없는 분리를 선택해 왔습니다. 그게 기업가치를 높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국에서는 기업인이 자녀에게 승계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반면 한국과 유럽에선 2세에게 기업을 승계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든, 분리되든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중복상장에 대해 경영진과 주주의 의견차가 큽니다.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그렇습니다. 모회사에 투자했든 자회사에 했든 주주는 늘 이익을 원합니다. 경영진도 주가 상승을 최우선 목표로 할 때는 주주와의 이해 상충 문제가 크지 않습니다. 임직원이 주식 보상을 받기 때문에 주가 상승이 중요한 경영 목표가 되는 미국 기술기업들이 이런 경우입니다. 반면 경영진이 주가 관리뿐 아니라 승계 같은 다른 요인도 중시하게 될 때는 주주와 갈등이 생깁니다.”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요.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 상충을 줄이는 메커니즘이 중요합니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여러 장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주주의 배당 요구입니다. 일례로 모회사 주주가 배당을 받는 대가로 자회사 상장을 승인하게 된다면,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가 보다 일치할 수 있습니다. 주주에게 중복상장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권을 주는 방법은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경영진이 주주 이익과 상반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주주가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 주주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한국의 경우 중복상장 제한은 투자자 보호를 증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피라미드형 지배구조의 특성상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1주 1의결권 원칙이 약할수록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 상충이 첨예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이 같은 제한이 있습니까.

“세계 각국은 IPO와 관련해 유통물량, 보호예수 등 다양한 조건을 둡니다. 미국은 공시 의무를 강하게 부과하고 주주 소송을 제기하기 쉽게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외 많은 부분은 시장에 맡깁니다.”

▷규제와 시장 자율 사이에서 균형은 어떻게 찾나요.

“자본시장이 성숙할수록 강제성 있는 규제보다는 시장 판단에 맡기는 게 일반적입니다. 한국 시장 역시 성장했고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0~60년 전과 지금 한국 시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시장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국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가 IPO를 추진했을 때 기관투자가들은 공모가가 과도하다고 평가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위워크 상장은 무산됐고, 결국 파산했습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면 시장이 잘 결정합니다.”

▷한국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중복상장의 예외적 허용 기준은 포괄적이어야 합니까, 명확해야 합니까.

“불분명한 규정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은 명확하면서 구조화된 규정과 제한적인 재량권입니다. 예를 들어 이익을 내는 기업은 자산이 10억원 이상, 이익 미실현 기업은 자산이 2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상장 규정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럴 때 거래소가 자산은 20억원 미만이어도 곧 이익을 낼 가능성이 큰 기업의 상장을 승인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중복상장 허용 기준 중 하나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첨단 기술업종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술기업이 중복상장을 하는 사례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모기업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2세 승계 가능성도 작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기술기업은 주식 보상 등 여러 특성상 경영진과 주주 간 이해 상충 가능성이 작습니다. 산업별로 다른 규정을 적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자체보다는 그 산업의 지배구조와 이해 상충 정도가 기준이 돼야 합니다.”

▷기업들은 신규 산업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고 그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방법으로 IPO를 제안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한국 자본시장은 성숙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다른 자금 조달 방법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일몰 조건 아래 중복상장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 안에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중복상장을 인정하는 겁니다.”

▷한국에 차등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이 있는 기업 경영진이 주주 이익과 상반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을 경우 투자자는 기업가치 할인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같은 논리로 투자자들은 모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의 가치 역시 낮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제이 리터 명예교수는

△1954년생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학·석사
△시카고대 경제학·재무학 박사
△재무관리학회 회장
△논문 인용 횟수(구글 스콜라 기준) 6만2000회 이상
△플로리다대 IPO 이니셔티브 책임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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