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는 건 돌인가, 물인가, 마음인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2 hours ago 7

일본 교토 정원 탐방기

일본 교토 오하라의 산젠인. 곧게 뻗은 삼나무 아래로 초록빛 이끼가 땅을 포근하게 덮었다.교토=김선미 기자

일본 교토 오하라의 산젠인. 곧게 뻗은 삼나무 아래로 초록빛 이끼가 땅을 포근하게 덮었다.교토=김선미 기자

교토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북쪽의 산골 마을 오하라는 공기부터 깨끗했다. 이른 새벽 비까지 내려 모든 게 청량했다. 돌담이 품은 선명한 초록빛 이끼와 고사리, 새들의 지저귐…. 나흘간 신록의 교토 정원들을 둘러보니 마음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 이끼 위 돌의 미소

오하라에서 오전 9시 문이 열릴 때 들어선 곳은 ‘동양의 보석상자’로 불리는 산젠인(三千院)이었다. 8세기 말~9세기 초 헤이안 시대 암자에서 시작해 훗날 황족 출신 승려가 주지를 맡은 천태종의 몬제키(門跡) 사찰이었다.

단풍나무가 이끼에 닿을 듯 말듯 늘어졌다. 교토=김선미 기자

단풍나무가 이끼에 닿을 듯 말듯 늘어졌다. 교토=김선미 기자
품격 있는 불당만큼 인상적이었던 건 오래된 숲을 품은 정원이었다. 높다란 삼나무들 밑에 이끼가 두툼한 카펫처럼 깔려 있고, 단풍나무는 이끼에 닿을 듯 말 듯 유려하게 늘어져 있었다. 나뭇가지가 이끼를 해치지 않도록 정원사들이 세심하게 관리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말차 케이크처럼 폭신한 이끼 속에는 와라베지장(童地蔵·아이 모습의 지장보살)들이 숨바꼭질하듯 앉아 있었다. 빗방울로 세수한 듯한 이 석상들의 맑은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깊은 산속 정토(浄土)에 내린 비는 오늘의 선물이었구나.’

이끼 속 와라베지장들. 교토=김선미 기자

이끼 속 와라베지장들. 교토=김선미 기자
히에이산 기슭 야세 계곡의 루리코인(瑠璃光院)에서는 차경(借景)의 현대적 감각을 보았다. 메이지 시대 별장이던 이곳은 2005년부터 공개되며 이름을 알렸다. 2층 서원에서 검게 옻칠된 상(床)이 창밖의 신록을 잔잔한 수면처럼 담아내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가을이 오면 이 상은 붉은 단풍을 비춰낼 것이다. 상 위에 잠시 머문 초록빛 일렁임을 보며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뜻의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를 되새겼다.

검게 옻칠한 상이 신록을 비추는 루리코인. 교토=김선미 기자

검게 옻칠한 상이 신록을 비추는 루리코인. 교토=김선미 기자

루리코인에서도 이끼를 만났다. 삼나무 이끼, 기는 이끼, 편백 이끼…. 정원 옆 부속 미술관 앞 작은 화단은 ‘비밀의 이끼 화단’ 같았다. 누구나 몸을 낮추기만 하면 꽃처럼 생긴 이끼의 삭(蒴·홀씨주머니)을 볼 수 있었다.

루리코인 인근 루이 이카르 미술관 화단의 이끼.  ⓒ노회은

루리코인 인근 루이 이카르 미술관 화단의 이끼. ⓒ노회은

● 비움 속 깨달음

일본 정원은 연못을 따라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물 없이 돌과 모래로 산수를 표현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차를 마시기 위해 몸과 마음을 낮추며 들어서는 다정(茶庭)으로 크게 나뉜다.

봄에는 수양 벚나무가  수수한 흙담 위로 쏟아질 듯 만개하는 료안지. 교토=김선미 기자

봄에는 수양 벚나무가 수수한 흙담 위로 쏟아질 듯 만개하는 료안지. 교토=김선미 기자

대표적 가레산스이 정원인 료안지(龍安寺)는 하얀 모래와 열다섯 개 돌로 일본 축소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작은 땅에 대자연을 응축하려는 일본 정원은 때로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큰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모래는 바다이고 돌은 섬일까. 호랑이 새끼가 물을 건너는 모습일까. 정원은 답을 주지 않고 오히려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돌인가, 물인가, 마음인가. 어쩌면 정원은 뒤뜰 쓰쿠바이(손 씻는 돌확)에 새겨진 ‘오유지족(吾唯知足)’, 즉 오직 족함을 알고 마음을 비우라는 속삭임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운데 입 구(口)를 포함하면 오유지족(吾唯知足) 문구를 이루는 물확. 교토=김선미 기자

가운데 입 구(口)를 포함하면 오유지족(吾唯知足) 문구를 이루는 물확. 교토=김선미 기자

가만히 정원을 보고 있으니 수수한 흙담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미묘하게 낮아졌다. 낡고 불완전한 것에서 시간의 깊이를 느끼는 와비사비(侘び寂び) 미학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 조성 지침서인 ‘사쿠테이키(作庭記)’에 따르면 작정가(作庭家·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사람)는 돌을 놓는 사람이고 돌이 놓이고 싶어 하는 자리를 알아보는 사람이다. 뛰어난 작정가는 한발 더 나아간다. 바람과 감정을 뜻하는 후제이(風情), 즉 장소의 풍취나 미묘한 분위기를 살린다.

정원은 누워서 볼 수도 있다. 교토=김선미 기자

정원은 누워서 볼 수도 있다. 교토=김선미 기자

곤치인(金地院)은 난젠지(南禪寺)의 부속 사찰로, 유명 작정가이자 다인(茶人)인 고보리 엔슈(1579~1647)가 정원을 만들었다. 학과 거북을 돌로 표현한 것보다 더 강렬했던 건, 흰 모래 위에 사선으로 놓인 징검다리 돌 배치였다. 고요한 쓸쓸함을 세련된 조형 속에 담는 ‘아름다운 사비’가 바로 이걸까.

모래 위에 돌을 사선으로 배치한 곤치인. 교토=김선미 기자

모래 위에 돌을 사선으로 배치한 곤치인. 교토=김선미 기자

● 물길과 돌길

예전에 일본 조경학자들을 만났을 때 “교토에서 딱 한 곳의 정원만 간다면 어디를 추천하겠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대답이 무린안(無鄰菴)이었다. 이번에 교토 정원 여행 계획을 짜면서 무린안을 첫 손에 꼽았던 이유다.

메이지 시대 정한론(征韓論)을 강력하게 주장한 정치가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의 별장이었던 이곳은 근대 조경의 거장 7대 오가와 지헤에가 1894~1896년에 만들었다. 히가시야마를 배경으로 삼고, 비와호의 물을 끌어들여 폭포와 계류, 넓은 잔디를 조성한 일본 근대 정원의 걸작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러일전쟁 직전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가 논의됐다니 착잡해진다.

비와호 물을 끌어들인 무린안. 교토=김선미 기자

비와호 물을 끌어들인 무린안. 교토=김선미 기자

비 오는 정원은 그렇게 아쉬운 역사를 품으면서도 감각을 일깨운다. 일본인들은 툇마루에 앉아 산과 물, 하얀 치자꽃과 보라색 꽃창포를 고요하게 감상했다. 무린안은 그림 같은 정원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돌 사이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비와 섞여 콸콸 우렁찼다.

무린안의 대표 식물인 치자. 교토=김선미 기자

무린안의 대표 식물인 치자. 교토=김선미 기자

무린안은 1941년 교토시에 기증되고 1951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공공정원이다. 정원사들은 히가시야마의 능선이 잘 보이도록 나무를 다듬고 잔디에 의도하지 않게 번진 이끼와 야생화도 돌본다. 인간은 계획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변화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정원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무린안을 감상하는 관람객. 교토=김선미 기자

무린안을 감상하는 관람객. 교토=김선미 기자

아라시야마의 오코치산소(大河内山荘)는 영화배우 오코치 덴지로(1898~1962)가 30년간 조성한 정원이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징검다리와 돌길은 걷는 리듬을 만들어 냈다. 휘어진 길을 따라 시선이 막혔다가 열리더니 어느 순간 전망대의 프레임을 통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배우의 정원에는 한 장면이 끝나면 다음 장면이 열리는 영화 같은 편집이 있었다.

교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오코치산소. 교토=김선미 기자

교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오코치산소. 교토=김선미 기자

빛을 머금은 오코치산소의 돌들. 교토=김선미 기자

빛을 머금은 오코치산소의 돌들. 교토=김선미 기자

● 전통은 어떻게 현대가 되나

1236년 창건된 임제종 사찰 도후쿠지(東福寺)는 뚜렷한 특색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사(東司·절 화장실)가 남아 있는 곳이자,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작정가 중 한 명인 시게모리 미레이(1896~1975)가 동서남북으로 만든 호조(방장·方丈) 정원이 있다.

도후쿠지의 동사(화장실). 교토=김선미 기자

도후쿠지의 동사(화장실). 교토=김선미 기자

동사에서 나온 기둥을 재활용해 북두칠성을 표현한 도후쿠지 호조정원의 동쪽 정원. ⓒ정지은

동사에서 나온 기둥을 재활용해 북두칠성을 표현한 도후쿠지 호조정원의 동쪽 정원. ⓒ정지은

일본 정원 역사 연구자이자 화가 지망생이었던 시게모리는 뛰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정원을 독학했다. 43세이던 1939년엔 도후쿠지의 버려진 돌과 기둥 등을 재활용해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주지 스님이 기거하는 호조를 기준으로 남쪽 정원에는 돌들을 일본식 꽃꽂이(이케바나) 형태로 세우고, 서쪽 정원에는 철쭉을 네모나게 다듬어 바둑판처럼 배열했다. 동쪽 정원은 사찰 동사에서 쓰이던 원통형 석재 일곱 개를 놓아 북두칠성을 표현했다.

이끼와 돌을 바둑판 패턴으로 구성한 도후쿠지 호조정원의 북쪽 정원. 교토=김선미 기자

이끼와 돌을 바둑판 패턴으로 구성한 도후쿠지 호조정원의 북쪽 정원. 교토=김선미 기자

북쪽 정원 앞에 서니 세계적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1904~1988년)가 왜 이 정원을 보고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의 추상 양식 같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둑판 패턴으로 나열한 돌과 이끼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형태가 허물어졌다. 이 소멸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고 했다. 교토에서 깨달았다. 일본 정원은 오래된 전통으로 박제된 풍경이 아니었다. 이끼가 번지고, 물길이 흐르고, 돌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며 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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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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