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힘세진 K컬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도 커졌다

3 hours ago 8

韓, 아직까지 ‘서구 중심주의’ 만연
K팝에서도 중국-동남아 출신 차별
제국주의적 혐오에서 벗어나야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박홍규 지음/320쪽·2만 원·틈새의시간

14세기에 쓰인 단테의 ‘신곡’은 오늘날에도 인본주의의 정수로 꼽힌다. 하지만 책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신곡’이 이슬람교의 창시자를 ‘제9구렁’에서 벌을 받는 존재로 묘사하는 등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사진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지옥의 9개 층을 그린 ‘지옥의 지도’. 틈새의시간 제공

14세기에 쓰인 단테의 ‘신곡’은 오늘날에도 인본주의의 정수로 꼽힌다. 하지만 책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신곡’이 이슬람교의 창시자를 ‘제9구렁’에서 벌을 받는 존재로 묘사하는 등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사진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지옥의 9개 층을 그린 ‘지옥의 지도’. 틈새의시간 제공


소셜미디어에선 K팝 아이돌 그룹 내 외국인 멤버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주로 중국권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인 이들을 “한국에서 키워줬더니 배은망덕하다”고 공격하는 내용이다. 이런 유의 현상을 두고 “피부색과 출신지에 따른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이 지배자적 시각을 내면화했다”고 분석한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가 세상을 보는 인식은 어딘지 모순적이다. K컬처로 고양된 자긍심이 비뚤어진 국수주의와 식민성으로 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영남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진정한 K컬처를 모색하려면 “제국주의적 혐오가 담긴 우리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식민지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탈식민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대표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1991년 국내 처음 번역한 저자가 35년의 탐구 끝에 펴낸 책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뾰족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20개 장에 나뉘어 담겼다.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변주되고 있다”고 보는 저자가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오리엔탈리즘을 풀이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등 걸작으로 여겨지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이 깊숙이 내재된 현실과 그 작동 원리를 살폈다. 14세기 집필된 이래 세계적 고전이자 인본주의의 정수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을 해체한 대목은 독자의 뒤통수를 때린다. ‘신곡’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사기꾼들이 벌 받는 ‘제9구렁’에서 몸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중세 서양에서 무함마드가 ‘기독교를 분열시킨 이단자’로 취급되던 맥락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단지 중세적 편견의 흔적이 아니”라며 “정전화된 텍스트가 타자를 규정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이 얼마나 일찍부터 고전의 내부에 자리했는지 드러내는 증거”라고 꼬집는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뒤 ‘인류 최고’로 격상된 문화적 요소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인 셈이다.

오리엔탈리즘 문제는 과거에 형성된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은 최근 미국 정부가 이주민을 차별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하는 정책 등을 ‘현대적 오리엔탈리즘’의 사례로 꼽는다. ‘21세기형 제국’은 점령이 아닌 개발로써 지배자와 피지배자 위계를 형성한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약소국의 재건과 성장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경제와 산업에 개입하는 건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는 실정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저자는 “무분별한 추앙을 멈추고 나의 권리만큼 타자의 권리가 소중함을 깨달”으며 변화를 일구자고 제언한다. “우리 내면의 콤플렉스를 걷어내고, 자유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뼈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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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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