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북한 정권은 왜 ‘남한 말’을 단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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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말/정소운 지음/404쪽·2만3000원·황소자리

2023년 북한은 남한말을 쓰면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다. ‘순수하고 우수한’ 자신들의 ‘평양문화어’를 저질스럽고 뒤죽박죽인 ‘괴뢰어’, ‘잡탕어’인 남한말이 오염시키고 있다고 봤다. 우리말이 북한 주민의 사상과 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북한 지배층의 위기의식은 차치하고, 북한말은 우리말과 실제로 얼마나 다를까.

30년간 통일부에서 일한 저자가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노동신문) 80년 치를 주축으로, 관영매체와 남북회담에서의 대화 등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북한 어휘의 의미와 사용 빈도를 추적하고 분단 이후 북한말이 남한말과 어떻게, 그리고 왜 달라졌는지 밝혀낸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의 ‘말다듬기’ 정책을 통해 외래어와 한자어를 배제하고 고유어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 결과 ‘손기척’(노크) 같은 사례가 나왔다. 남한과의 차별화를 위해 화‘페’처럼 단어의 표기법을 바꾸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온전히 성공한 건 아니었다. ‘깜빠니야’(캠페인) 같은 외래어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돈데코’(환전상) 같은 속어, 이른바 ‘장마당어’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한자어가 줄기는커녕 새로운 사자성어를 계속 만들어 내는 지경이다.

독재국가라는 특징도 말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말이 수령의 지시에 따라 생겨나기도 한다. 김일성의 한마디에 당나귀가 ‘하늘소’로 불리게 됐다. 정치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자취를 감춰 버리는 말도 있다. 2023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꺼낸 뒤 사라진 ‘남조선’, ‘통일’ 등의 단어가 그렇다.

언어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계도한 북한말이, 자유분방하게 발전해 온 남한말에 침식당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북한은 언어를 통제함으로써 언어의 순수성, 정확히는 체제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 저자도 지적하듯 보호법까지 만드는 시점에서 이미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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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기자 rep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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