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현장이 방송을 통해 이례적으로 공개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의 이면에 있는 제조 경쟁력이 주목받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한 배경에는 첨단 장비뿐 아니라 수개월간 이어지는 초정밀 공정과 24시간 라인을 지키는 엔지니어, 실패를 감수해온 조직 문화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팹…HBM 신화 만든 현장의 힘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은 지난 11일 '처음 만난 세계 - 이천 SK하이닉스 72시간' 편을 통해 경기 이천캠퍼스와 HBM 개발·생산 현장을 조명했다. SK하이닉스의 핵심 생산 거점인 이천캠퍼스는 하루 3만명가량이 오가는 대규모 사업장이다. 방송은 이곳을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연구개발, 생산, 품질 검증, 물류, 지원 인력이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도시처럼 그려냈다.
가장 눈길을 끈 공간은 외부 공개가 제한돼온 팹(Fab) 내부였다. 제작진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 먼지 한 톨까지 통제되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카메라에 담았다. 팹 안에서는 천장 레일을 따라 오버헤드 호이스트 트랜스포트(OHT)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전방개구식 웨이퍼 운반용기(FOUP)를 옮겼다. FOUP 하나에는 웨이퍼 25장이 담긴다. 방송에서는 웨이퍼 한 장의 가치가 고급 자동차 한 대에 비유될 정도로 높다는 설명도 나왔다.
반도체 한 개가 완성되기까지는 최소 4개월이 걸린다. 팹 내부에서만 수백 개 공정과 계측, 검증을 거쳐야 한다. 미세한 오차나 이물질 하나가 수율과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생산라인은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자동화 설비와 로봇이 공정을 수행하지만, 장비 이상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장비 한 대가 멈추면 생산 차질과 품질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엔지니어들은 교대근무를 하며 라인을 지킨다.
방송은 화려한 실적 뒤에 가려진 현장의 반복적 노동도 부각했다. 클린룸 청소 담당 구성원들은 하루 1만5000보 가까이 걸으며 장비 주변과 이동 동선을 관리했다. 생산 효율을 0.1%라도 끌어올리기 위한 병목 개선 회의도 이어졌다. 작은 개선을 쌓아 수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현장에서는 '이삭줍기'에 비유했다.
후공정에서는 완성된 제품의 잠재 불량을 찾아내는 테스트 과정이 소개됐다. 패키징을 마친 반도체에 강한 열과 전기를 가해 극한 환경에서도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한 테스트 엔지니어는 자신의 역할을 '반도체 의사'라고 표현했다. 제품은 100여 가지 검증을 통과해야 출하될 수 있다.
HBM 분석 현장도 공개됐다. 연구원들은 HBM을 층별로 깎아내며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 대형 현미경 장비로 소자를 수천만 배 확대해 설계와 실제 구현 상태를 비교했다. 방송에 등장한 구성원들은 또렷하게 구현된 반도체 단면을 보며 "예쁘다"고 표현했다. 나노 단위 공정을 다루는 엔지니어들에게 반도체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고도로 정교한 구조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HBM 뒤엔 사람이 있었다
SK하이닉스의 HBM 성과는 최근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맞물려 시장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매출이 50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방송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188만원으로 마감했고 시가총액은 1300조원대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방송은 주가나 실적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제조 현장의 축적에 초점을 맞췄다.
HBM 개발 초기부터 참여한 구성원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업황 침체기에도 기술 개발과 양산 준비를 멈추지 않았고,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먼저 시도한 경험이 현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한 직원은 "실패하더라도 우선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년 차 엔지니어는 HBM 개발 과정을 돌아보며 "확신하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면서도 "희망은 놓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회사가 어려웠던 시절을 견뎌낸 구성원들 이야기도 소개됐다. 무급휴직과 전력 절감 시기를 버틴 직원들, 30년 가까이 새벽 사내 식당에서 하루를 시작한 시니어 엔지니어, 19세에 상경해 생산라인을 지켜온 쌍둥이 자매의 사연이 방송에 담겼다. 한 장기근속 직원은 회사가 어려울 때 팹 내부 형광등까지 줄여가며 일했던 기억을 전하며, 그런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의 일상도 함께 비쳤다. 신입사원들은 낯선 공정 용어와 장비를 익히며 현장에 적응했고, 경력직 직원들도 빠르게 바뀌는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방송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HBM 제품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후배가 함께 지식을 축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원팀' 문화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송이 '숫자'로 소비되던 SK하이닉스의 HBM 호황을 제조 현장의 관점에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반도체 시장의 승부는 제품 성능과 고객사 확보에서 갈리지만 그 토대는 결국 수율과 품질, 안정적인 양산 능력이란 얘기다. 먼지 한 톨을 줄이는 관리, 장비 하나를 살피는 집중력, 불량 하나를 끝까지 찾아내는 검증, 실패를 감수한 기술 축적이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번에 공개된 이천캠퍼스의 72시간은 그 성과가 단기간의 호황이나 특정 제품의 인기에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축적된 제조 역량과 사람의 힘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1 day ago
3






![[지표로 보는 경제]5월 14일](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5/13/133918786.1.jpg)

!["아아 팔아 갖고는"…치킨·볶음밥까지 내놓은 커피전문점 '속사정' [트렌드+]](https://img.hankyung.com/photo/202604/01.43949627.1.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