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4조 적자에서 6조 흑자로…일본제철은 어떻게 부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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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시에 있는 일본제철 ‘동일본제철소 가시마 지구’. /AFP연합뉴스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시에 있는 일본제철 ‘동일본제철소 가시마 지구’. /AFP연합뉴스

일본 최대 철강기업이자 대표 제조기업인 일본제철. 일본 제조업 전반에 위기가 닥치면서 2018년 일본제철도 적자 수렁에 빠진다. 2019년엔 1950년 출범 이래 최대 손실을 보고하기에 이른다. 2019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일본제철의 적자폭은 4300억엔(약 4조2700억원)에 달했다. 전통 제조업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어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2022년 3월 결산에선 6400억엔(약 6조2000억원) 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한다. 2년 만에 사상 최대 손실에서 역대 최고 이익의 실적 대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이 사이 일본제철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책마을] 4조 적자에서 6조 흑자로…일본제철은 어떻게 부활했나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일본제철의 환생>은 제조업 취재를 오래 해온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베테랑 경제 기자가 쓴 책이다. 저자는 2019년 하시모토 에이지가 일본제철 사장으로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제철의 화려한 부활 과정을 집중 취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에”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제조업은 규모가 크고, 대규모 설비가 많아 변화가 힘든 업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무거운 일본제철이 해냈다면, 다른 제조기업도 못 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의 중요성이 커져가는 시대에 ‘올드 이코노미’인 제조기업을 다시 살리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철강, 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 대한 고민을 한국보다 앞서 한 일본의 대표 기업이 내놓은 답을 보여준다.

책에는 일본제철이 어떤 경영 혁신을 통해 살아났는지 구체적 과정이 소개된다. 미래 시장성과 현재 효율을 고려해 사업 축소를 검토하고, 품질을 바탕으로 고객과의 협상에서 강재 가격과 정산 방식을 재조정하는 일, 속도전으로 해외 파트너사를 설득해 합작인수를 결행한 과정 등이다. 기존 생산 프로세스에서 상호 학습을 통해 다른 장소의 사업장과 사일로 현상(부서 이기주의)을 타개하는 법,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투입하고 투자를 단행하는 법 등도 보여준다.

일본제철은 이런 노력으로 3년 연속 이어진 적자 늪에서 빠져나온다. 구조조정과 가격 인상으로 반등한 수익은 인도 조선소 인수합병전에 투입하고, 탈탄소 전환에 쓴다. 이런 체질 개선을 거듭한 결과 다시 효율을 개선해 역동적 조직 문화, 기술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구조조정과 혁신 과정에서 예상하듯 조직원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하시모토 사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밀고 나간다.

일본제철은 여기서 더 나아가 2023년 12월 앤드루 카네기와 존 피어폰트 모건 등이 설립한 미국 대표 철강업체 US스틸을 인수한다고 발표해 글로벌 시장을 놀라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지난 2월 US스틸 인수를 철회하는 대신 출자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지만, 이 경영 판단의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 4위 철강 생산량을 자랑하는 일본제철이 왜 미국 3위 철강기업을 141억달러(약 20조원)의 비용과 고용 승계 조건 등을 안고 인수하겠다고 나섰던 것인가.

저자는 “인사이더로 변신해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친 파도를 넘어가고자” 하는 일본제철의 절박한 비전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앞서 일본제철은 유럽의 아르셀로미탈과 손잡고 9조3634억원을 투자해 인도 최대 철강회사인 에사르스틸을 인수하기도 했다. 저자는 “일본제철이 설계하는 글로벌 3.0은 상공정에서 하공정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 해외에 뿌리를 내리는 형태”라며 “‘메이드 인 재팬’에 집착하지 않고 일본을 거점으로 한 기존의 국제분업 모델에서 탈피하는 것, 그 위대한 첫걸음이 ‘아르셀로미탈·닛폰스틸(AMNS) 인디아’”라고 설명한다. US스틸 인수 시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경제의 변동과 혼란 속에서 한국 제조업은 어떻게 거듭나야 할지 고민해보기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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