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궁중문화축전'에 관람객으로 갔었는데, 처음으로 투어를 진행하게 되어서 새로웠어요. 오늘 운 좋게 날씨도 좋았죠. 궁궐 투어하기 완벽한 날씨였습니다. 부용지 가는 길 양옆에 나무가 있고, 중간에 하늘이 트여있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2025 봄 궁중문화축전'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창덕궁을 산책하며 관련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인 '아침 궁을 깨우다'를 진행 중인 파비앙은 지난달 30일 첫날 일정을 마치고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인인 그를 많은 이들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고 말한다. 2007년 대학생이었던 파비앙은 첫 아시아 여행지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을 보고 "신기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그는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 학교를 졸업한 뒤 2008년 다시 한국으로 와 정착했다. 올해로 '한국살이' 18년 차가 됐다.
배우, 방송인, 모델, 태권도 선수 등 그를 대표하는 다양한 수식어 중에서 요즘 유독 돋보이는 건 '한국사 해설사'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객원 한국사 해설사로 7년째 활동 중이며,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있다. 서울 소재 5개의 궁궐과 종묘에서 매년 봄·가을 펼쳐지는 문화유산 축제인 '궁중문화축전'에 참여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파비앙이 진행한 첫날 행사에는 미국·뉴질랜드·영국·프랑스·독일 등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파비앙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너무 어렵지 않게 기본 지식을 전달하려고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해설하면서 알게 된 게 기본부터 알려주는 게 좋다는 거다. 창덕궁뿐만 아니라 조선이 무엇이고, 서울 어디에 궁궐이 있는지, 왜 궁궐이 다섯 개나 있는 것인지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의 고요한 궁을 산책할 엄청난 기회이지 않나.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걷는 속도도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창덕궁과의 연이 깊은 파비앙이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창덕궁을 봤던 2007년의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그는 "현대적인 도시에 이렇게 고요한 곳이 있다니 엄청나게 신기했다. 여름이었는데 오픈 시간에 맞춰 가서 사람도 없었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많아서 아름다웠다"면서 "한국의 궁궐은 건물 자체도 예쁘지만,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살아가려는 철학이 담긴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경복궁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까지 해 화제가 됐다. 이에 관해 묻자 파비앙은 환하게 웃으며 "'경복궁 뷰의 집으로 가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난 집 안쪽의 이미지만 봐서 뷰는 몰랐다. 직접 도착해서야 '경복궁 뷰'라는 걸 알았다. 지금 집이 너무 좋은데, 만약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선택했을 거다. 이건 본 사람만 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간 파비앙은 남다른 '한국 사랑' 행보를 보여왔다. 5세 때부터 프랑스에서 태권도를 배웠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했으며, 한국 영주권도 획득했다. 최근에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홍보대사로도 위촉됐고, 현재 한국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파비앙은 "태권도를 어릴 때부터 시작했고,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언어 등에 일찍 매료됐다.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모든 게 달라서 너무 신기했다. 한국에 와서 더 큰 매력을 느꼈다"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목표이지 않나. 제가 좋아하는 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외국인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주는 거다. 항상 새로운 걸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곳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을 전달하려 한다"고 밝혔다.
누군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냐는 질문에는 "이야기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다양한 루트로 전달하는 게 나의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파비앙은 "다양한 국가 유산에 대한 전문지식을 조금 더 쌓고 싶다. 올해 도전하는 한국관광통역안내사는 가이드가 되기 위한 자격증이라서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응시하는데 나는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홍보대사로서 직접 현장에 가서 배우고 돕고 싶기도 하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2025 봄 궁중문화축전'은 서울의 5대 고궁과 종묘에서 오는 4일까지 개최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