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국의 화려했던 '광기의 시대'…옛 연인 붙잡는데 인생 바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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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성대한 파티가 좋아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잖아요. 작은 파티에는 프라이버시가 없거든요.”

[책마을] 미국의 화려했던 '광기의 시대'…옛 연인 붙잡는데 인생 바친 남자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사진)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소설 속 대사처럼 화려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남자입니다. 1920년대 부자들의 해변가 별장이 즐비한 미국 중서부 롱아일랜드에 등장한 이 남자는 주말마다 수백 명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어요. 최근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제작자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구현한 무대”라고 한 건 원작 속 파티가 워낙 화려해서죠.

그런데 정작 개츠비는 파티에 관심이 없어 보여요. 이 파티는 사실 오직 한 여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몸부림이거든요.

올해 출간 100주년을 맞은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욕망과 사랑, 좌절과 타락을 그립니다.

가난한 청년이던 개츠비는 오직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겠다는 목표만을 향해 살아왔어요. 밀주 제조와 금융 사기 등 온갖 범죄로 큰돈을 벌고 신분까지 세탁해 데이지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하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해 딸을 낳은 데이지는 가정을 버리지 못해요. 얽히고설킨 갈등 끝에 개츠비가 살해당하는데, 장례식에는 세 명만이 참석합니다. 그가 과시하던 부와 명성이 무색해지도록 초라한 마지막이죠.

이 작품은 첫사랑 얘기 그 이상입니다. 대공황 직전 호황에 취해 있던 동시에 불평등, 허무주의가 퍼지던 격동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드림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줍니다. 1920년대는 미국에서 ‘재즈 시대’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로 불립니다. 풍요와 광기의 시대였죠.

개츠비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화신처럼 보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불법적 방법을 통했지만) 엄청난 부를 이뤘어요. 하지만 개츠비가 아무리 자신을 옥스퍼드대 출신이라고 해도 손님들은 믿지 않아요. 행동이 상류층 사람 같지 않다는 거죠. 사람의 태도와 취향은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계급적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세대 간 소득 탄력성 사이 상관관계를 분석한 통계 그래프를 ‘위대한 개츠비 곡선’으로 부르는 이유죠.

개츠비가 밤마다 바라보는 해협 너머, 데이지의 집 앞 부둣가에 켜진 초록색 불빛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 좌절된 아메리칸드림처럼 보입니다. 소설 끝부분에 화자 닉은 말합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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