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구려 ‘평양 천도’는 기후 변화 탓”

2 weeks ago 16

◇기후로 보는 한국사/박정재 지음/312쪽·1만9800원·바다출판사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삼국사기에 남은 고구려 장수왕의 천도 관련 기록은 이 한 줄뿐이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천도를 감행한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역사학자들은 국내성의 협소한 공간과 지리적 고립,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남진 정책 등을 천도의 배경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이자 고(古)기후학자인 저자는 여기에 ‘기후 변화’라는 새로운 변수를 더한다. 온난했던 동아시아의 기후가 5세기 무렵 춥고 건조해지자, 고구려가 상대적으로 날씨가 온화하고 농경 기반이 안정적인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다. 저자는 중국 동굴의 석순과 제주도 동수악 퇴적물의 꽃가루 비율 등을 분석해 과거의 기온과 강수량을 복원하고, 이를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비교한다. 책은 고조선 건국부터 조선 후기 민란까지 한국사의 주요 장면을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이런 시선은 익숙한 역사적 평가를 뒤집기도 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300여 년간의 가뭄과 동굴 석순에서 추론할 수 있는 강수량 자료를 비교함으로써 후대에 안정적인 통치를 펼쳤다고 평가받는 왕들의 재위기에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내렸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한파와 가뭄이 겹친 1670∼1671년에는 경신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저자는 기후가 역사를 결정한다고 단정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날씨가 곧 식량과 민심으로 이어졌던 시대에 자연환경이 국가의 흥망과 통치자의 평가를 좌우한 중요한 조건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프리미엄뷰 트렌디깅 오늘의 운세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