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여성에 닫혀 있던 과학의 문… 퀴리가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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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연구원 45명 찾아와 연구 이어가 영향력 주고받으며 과학 발전 이뤄 ◇마리 퀴리의 원소들/데이바 소벨 지음·김병순 옮김/447쪽·2만6000원·돌베개 1906년 한 여성 과학자가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여성 최초로 강단에 섰다는 소문이 퍼지자 젊은 여성 연구원들이 몰려들었다. 캐나다 태생 해리엇 브룩스는 방사능 연구를 하기 위해 유럽으로 넘어왔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하던 엘렌 글레디치도 이듬해 희망을 품고 프랑스로 왔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연구실을 거친 여성 연구원의 수가 자그마치 45명. 마리 퀴리(1867∼1934)의 연구실은 그렇게 성황을 이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과학 기자 출신 논픽션 작가가 퀴리의 삶을 쓴 전기다. 퀴리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인물.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두 차례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과학자인 퀴리의 삶을 세세하게 좇는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퀴리의 삶과 업적을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고 훈련받은 젊은 여성들과 함께 풀어 나간다는 점이다. 당시는 여성에게 과학자의 길이 좀처럼 열리지 않던 시대였다. 퀴리 역시 남편 피에르(1859∼1906)와 노벨상을 함께 받은 뒤에도 소르본대 교수 자리를 얻지 못했다. 남편이 사고로 숨진 뒤에야 그의 강의를 이어받아 교수가 됐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노벨상 수상자인 퀴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자들의 처지도 비슷했다. 퀴리의 한 제자는 결혼을 앞두고 대학으로부터 사직을 요구받자 약혼을 깼다. 다른 제자는 교수가 됐지만 종신 재직권과 독립된 연구실을 오랫동안 얻지 못했다. 뛰어난 연구 성과만으로는 차별의 벽을 넘기 어려운 시대였다. 퀴리가 여성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는 활동가였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연구실은 여성들이 과학자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서로 배우고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퀴리는) 과학을 자신의 삶으로 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실험실을 개방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퀴리의 제자들 역시 과학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퀴리와 여성 과학자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간 셈이다. 결국 과학의 발전이란 한 천재의 업적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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