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쟁은 필름을 키웠고, 필름은 전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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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관련 화학물질로 폭약 제조
세계전쟁 땐 군수산업으로 전환
◇필름과 전쟁/앨리스러브조이지음·윤종은 옮김/284쪽·2만2000원·소소의책

디지털 촬영이 대세인 요즘에도 여전히 필름 촬영을 고수하는 영화감독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이 대표적이다. 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일생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2023년)도 필름으로 찍었다. 놀런 감독은 자신이 애호하는 필름이, 자신이 영화로 다뤘던 핵무기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았을까.

‘필름과 전쟁’은 영화와 미디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저자가 필름과 전쟁의 관계를 추적한 책이다. 미국 필름 제조기업 이스트먼 코닥(코닥)과 독일의 아그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필름을 제조하기 위해선 수많은 화학물질과 그것을 정제하기 위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필름 업체들은 폭약과 독가스를 제조하는 군수산업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필름업계 성장엔 20세기 영화 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따른 전쟁 특수가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특히 선두 주자였던 코닥은 우라늄 추출 노하우까지 확보해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필름 산업을 지탱한 제국주의도 폭로한다. 아프리카에서 원자재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철도와 공장, 원주민에게 강제된 노동은 문명의 진보로 포장됐다. 벨기에령이었던 콩고(현 콩고민주공화국)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콩고로부터 우라늄을 비롯한 많은 핵심 자원들이 연합국으로 넘어갔다. 독일에 항복했던 벨기에는 전후 콩고 지배의 정당성을 연합국에 인정받기 위해 해외에서 은밀하게 선전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들 역시 수탈한 원자재로 만든 필름으로 촬영됐다.

결말부에선 필름 산업이 야기한 환경오염에 대해 지적하며, 군수산업과의 연계가 양날의 검이 됐음을 보여준다. 필름은 매우 민감한 소재로 만들어져 극소량의 방사능 낙진에도 손상됐다.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벌이자 방사성 물질이 온 세상에 퍼졌다는 사실은 필름 기업들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초한 방사능 오염을 해결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저자는 기술 발전이 노동력 착취와 환경오염 등 구조적 문제를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오늘날 기술의 결정체인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마찬가지란 점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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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기자 rep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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