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소칼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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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소칼로광장

스페인 문화권에서 광장(plaza)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치·종교·상업·공동체 생활이 교차하는 도시의 심장이자 삶의 중심 공간이다. 고대 로마의 포럼(forum) 전통과 중세 가톨릭 문화, 이슬람 세력과의 오랜 대결 과정에서 형성된 강한 도시 공동체 의식이 결합해 만들어낸 유산이다.

이 같은 광장 문화는 스페인제국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건설한 식민지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1573년 ‘인디아스 조례’를 통해 식민 도시 설계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도시 중심에 광장을 조성하고 그 주변에 성당과 총독부, 군사 시설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권력을 시각적으로 조직하고 통치 질서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멕시코), 부에노스아이레스 마요광장(아르헨티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축구장 8개 면적의 소칼로광장은 도심형 광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급이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1년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킨 뒤 거대한 신전을 허물고 그 광활한 터를 그대로 도시 중심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광장 동쪽의 대통령궁(국립궁전)은 식민지 시절 스페인 부왕(副王) 관저로 사용되다가 1821년 독립 후 행정수반이 머무는 곳이 됐다. 이 건물 2층 중앙 발코니는 멕시코 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로 꼽힌다. 매년 독립기념일 전야인 9월 15일 밤 대통령이 나와 “비바(영원하라), 멕시코”를 외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제 이 역사적 공간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함께 당당히 서 있던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의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발코니 아래 소칼로광장을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인파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이젠 K팝 아티스트가 세계 각국의 국빈급 예우를 받는 시대다. 예술·문화로 대표되는 소프트파워는 경제력과 군사력 못지않게 국가 위상을 결정하는 척도가 됐다. 어쩌면 우린 운 좋게도 BTS를 통해 K컬처가 재편하는 글로벌 문화 권력의 전환점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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