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국경을 넘는 순간 가장 먼저 내보이는 ‘국가 공인 명함’이다. 한 나라의 격(格)을 담아낸 작지만 강한 신분증이다. 각국의 디자인 역량과 보안 기술, 세계에 투영하고 싶은 자국만의 정체성 등이 집약돼 있다. 공항 심사대에서 펼쳐지는 여권 속지에는 그 나라가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장 상징적 이미지가 담겨 있다.
노르웨이 여권의 속지 이미지는 그냥 보면 평범한 산맥이지만 자외선을 비추면 환상적인 오로라가 나타난다. 핀란드 여권은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 무스가 숲을 뛰어가는 ‘플립북’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벨기에는 틴틴, 스머프 같은 자국 만화 캐릭터를 삽입해 문화 강국의 면모를 뽐낸다. 일본이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 작품을 담아 예술성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은 2021년 말 새로운 전자여권을 도입하며 33년 만에 표지 색깔을 녹색에서 남색으로 바꿨다. 오른쪽 위에는 대한민국 국장(무궁화 문양)이 작게 들어가고, 왼쪽 아래 커다란 태극 문양이 점 패턴으로 양각 처리돼 입체감을 살린 게 특징이다. 속지에는 선사시대 토기부터 훈민정음 언해본, 거북선, 김홍도 풍속화 등 시대별 이미지를 담아 반만년 역사를 한 권의 화보처럼 엮어냈다. 내구성이 강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쓰고 보안성을 높인 것도 정보기술(IT) 강국다운 선택이다. 한국 여권은 파워도 강하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 및 지역이 188곳으로, 싱가포르(192곳)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에서 ‘트럼프 여권’이 발급된다고 한다. 국무부가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상과 친필 서명이 담긴 한정판 여권을 오는 7월부터 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생존 대통령 얼굴이 여권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자기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자신을 예수와 나란히 배치한 이미지까지 공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 여권 발행을 두고 국가의 공식 문서마저 ‘팬덤 굿즈’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 얼굴을 넣은 여권이 어떤 품격을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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