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챗GPT '신뢰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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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챗GPT '신뢰하는 사람'

인공지능(AI) 챗봇과 사랑에 빠지거나 깊은 고민을 털어놓으며 일상을 의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AI는 24시간 곁에 있고, 사용자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는다. 언제나 내 편에서 대답해주는 기계의 ‘공감’은 고립된 현대인에게 달콤한 안식처가 된다. 국내에서도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회초년생이 AI에 맞춤형 심리상담을 맡기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AI 의존증’ 심화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셰리 터클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에서 “우리는 기술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서로에게는 더 적은 것을 기대한다”고 썼다. 기술이 사회의 연결이 아니라 고립을 부추기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AI가 상담사 역할을 대신할수록 인간 사이의 온기는 식어갈 수밖에 없다.

AI는 그럴듯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나누며 함께 흘려줄 눈물도, 무너지는 어깨를 잡아줄 손도 없다. 알고리즘이 흉내 내는 공감은 차가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로운 메아리일 뿐이다.

챗GPT 운영사 오픈AI가 최근 ‘신뢰하는 사람(trusted contact)’이라는 기능을 도입했다고 한다. 사용자가 대화 중 자해 등의 징후를 보이면 미리 등록한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림을 보내는 시스템이다. 대화 내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이 상황을 검토해 지인에게 연락한다. 위험 신호를 보이는 사용자를 다시 사람에게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AI에 주문한 것이다. 기술이 스스로의 근본적 한계를 인정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도 한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는 없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우울과 고립의 늪에 빠진 이를 건져 올리는 것은 정밀한 데이터 조합이 아니라 진심 어린 안부 한마디다. AI 시대일수록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영리해져도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온기의 무게를 대체할 수는 없다. 챗GPT가 보낸 짧은 알림 문자가 다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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