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의 중국 현지법인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중국에 왔을 때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한국 사람끼리 얘기할 때도 공한증(恐韓症)이란 단어를 절대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어 발음(콩한쩡)도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무심코 뱉은 이 말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시비가 붙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한국 축구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대기록을 확정한 날, 중국 축구는 또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 자동 출전으로 예선전에 참가하지 않은 2002 한·일 월드컵 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선 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 내년 북중미 월드컵의 전체 티켓은 32장에서 48장으로, 아시아 몫은 4.5장에서 8.5장으로 늘었는데, 14억 명의 거대 시장인 중국의 월드컵 진출을 용이하도록 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중국이 38년 만에 인도네시아에 패배해 월드컵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중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SNS에는 경기를 본 기억을 지우며 싶다며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머리를 넣고 물구나무선 영상이 올라와 있다. “축구는 신이 중국에 내린 형벌” “월드컵에 진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월드컵 개최뿐”이라는 자조 섞인 글도 보인다. 판매 15분 만에 ‘광클(광속클릭)’로 5만5000장이 매진된 최종전 티켓은 중국이 ‘광탈(광속탈락)’하자 중고 사이트에 반값 매물이 넘쳐난다.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중국이 축구를 못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도 오만가지다. 오랜 기간 한 자녀 정책을 편 탓에 팀워크와 희생정신이 결여돼 있다는 ‘외아들론’부터 축구 행정마저 공산당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관료주의론’에 이르기까지 무수하다. 모든 일을 상부에 보고하고 통제받는 분위기 속에선 창의적인 ‘축구 IQ’가 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요즈음, 아직도 초격차를 지키고 있는 게 축구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