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자 원익IPS와 유진테크, 브이엠 등 회로 미세화와 관련이 깊은 전(前) 공정 장비업체의 주가가 먼저 반응했다. 올 들어선 반도체 후공정에서도 특히 첨단 패키징 공정 기술을 다루는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미세 공정 기술이 한계에 부닥치자 반도체 칩 간 효율적인 연결과 수율을 좌우하는 소부장 업체가 주목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세 공정 관련 업체들도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해외 시장 또는 연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기업은 상당 기간 주가가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 차세대 기판·검사 공정 부상
26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시장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분야는 기판업체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등에 장착되는 고사양 반도체용 패키징 기판(FC-BGA)을 생산하는 업체의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세계 1위인 일본 무라타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기는 올해 들어 주가가 6배 이상 뛰었다. 삼성전기는 FC-BGA 공급 부족 속에서 대규모 추가 투자를 진행하며 올해 안에 AI 용 기판 시장 글로벌 1위 달성을 노리고 있다. FC-BGA 매출 비중이 큰 대덕전자는 올해 주가가 259% 올랐다.
비에이치(150%), 코리아써키트(128%) 티엘비(121%) 등 다른 PCB 제조사의 주가도 올해 들어 2배 이상 뛰었다.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부문에서도 AI 반도체와 산업용 수요 급증으로 공급 부족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LG이노텍에 더해 기판 검사 장비 업체인 기가비스까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판 업체에 대한 시장 기대는 1년째 지속되고 있다. 대덕전자는 지난해 5월 26일부터 이날까지 최근 1년간 1054% 급등했는데, 올 들어서만 259% 올랐다. 코리아써키트와 티엘비도 같은 기간 각각 994%, 643% 급등했다.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삼성전기로 1198% 뛰었다. SK하이닉스(911%), 삼성전자(447%)를 앞섰다.
◇ 본딩·테스트, HBM 수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대가 열리면서 칩을 정밀하게 붙이는 본딩 장비도 핵심 병목 구간으로 떠올랐다. 열 압착(TC) 본더를 넘어 하이브리드 본더 제품군까지 갖춘 한미반도체에 자금이 몰린 배경이다. PCB 하부에 적외선 레이저를 쏘는 레이저 본더를 개발한 프로텍도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본딩 공정을 2~3초 만에 끝내 PCB 휨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패키징 구조가 복잡해지고 칩 간 연결 부위가 늘어나면서 기판과 칩 등을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기술을 갖춘 업체도 몸값이 수직상승했다. 반도체 칩과 외부회로를 전기적으로 연결해주는 소재인 본딩 와이어를 생산하는 엠케이전자는 올해 주가가 4배 넘게 올랐다. 반도체 칩과 기판을 이어주는 접합소재 ‘솔더볼’의을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도 올 들어 주가가 192% 상승했다.
피에스케이홀딩스에 대한 기대도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에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트 기술도 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AI 반도체는 구조가 복잡하고 동작 속도가 빨라 테스트 난도가 높은 데다 칩 생산량 자체가 늘면서 검사 장비와 부품 수요도 급증해서다. 프로브카드와 인터페이스 보드·테스트소켓 등을 생산하는 티에스이가 대표적이다.
전(前) 공정 장비업체도 AI 시대 흐름에서 비켜간 것은 아니다. 공정이 길고 복잡해지면서 증착 장비업체 테스, 감광액(PR) 제거 장비업체 피에스케이, 원자층 증착(ALD)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 분야까지 진출한 주성엔지니어링 등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생산라인 증설이 본격화하면서 클린룸 설비를 공급하는 신성이엔지 시가총액도 급증했다.
◇ 유리 기판·광통신·냉각 기술 주목
시장에선 첨단 패키징 중심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차세대 인쇄회로기판(PCB)으로 꼽히는 유리 기판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는 “칩셋 기반 패키징 구조가 확대될수록 유리 기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칩셋은 기존 칩의 기능을 잘게 나눈 뒤 다시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기술이다. 웨이퍼 절단(다이싱) 기술도 차세대 수혜 분야로 거론된다. HBM 단수가 높아질수록 웨이퍼도 얇아져 이를 정밀하게 절단하는 기술력이 중요해져서다. 관련 장비업체인 이오테크닉스 등이 주목받는 이유다.
업계에선 AI 반도체 경쟁이 ‘칩 성능’에서 ‘칩 간 연결’로 넘어가면서 구리 선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실리콘 포토닉스가 새 병목 기술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브라이언 강 노틸러브벤처스 대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간 데이터 전송 지연으로 인한 연산 효율 저하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냉각 기술도 AI 시대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의 공기 냉각 방식만으로는 고밀도 GPU 서버의 발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니징디렉터는 “냉각 성능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GPU를 고밀도로 배치할 수 있다”며 “냉각 기술은 반도체 성능만큼 중요한 인프라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식/강해령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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