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지애 이다원 기자] 대구의 1000가구 규모의 A지주택은 준공 4개월 전 시공사에서 조합에 기존보다 30% 증액된 674억원의 공사비를 청구했다. 이에 일부 조합원들이 입주 거부 의사를 보이며 소송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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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출처=챗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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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서울의 B지주택은 토지매입률을 92%까지 끌어올리며 착공 가능한 조건인 토지매입률 95%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일부 토지 소유주들의 ‘알박기’로 사업이 지연되며 결국 시행사가 파산했다. 이 지주택의 최초 조합원들은 결국 납입금(계약금+분담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지역주택조합(지주택)은 10곳 중 1~2곳만 겨우 첫 삽을 뜰 정도로 극악한 성공률에 이젠 ‘원수에게도 권하지 않는 지옥주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가까스로 첫 삽을 뜨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사비로 분쟁이 격화하며 입주가 지연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상식 밖의 분담금 증액 등 수십 년째 지속되는 지주택 문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주문하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가까스로 첫 삽 떴는데…공사비 증액 ‘재건축 저리 가라’ 수준
23일 국토교통부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지주택 사업지 618곳을 대상으로 1차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30.2%(187곳)가 분쟁 중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11곳이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다. 그 외 주요 분쟁 원인으로는 부실한 조합운영(52건)과 탈퇴·환불 지연(50건) 등이 동반됐지만 정부는 지주택과 관련해 공사비 갈등 문제를 보다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다른 분쟁 원인보다 공사비 갈등이 지주택을 둘러싼 문제들을 보다 총체적으로 아우르고 있어서다.
재건축, 재개발 등 일반 정비사업장의 경우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될 경우 시공사가 평균적으로 10%대 증액을 요구하는 경우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공사비 갈등이 발생한 지주택 사업장 10곳 중 8곳은 시공사가 30%대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국토부의 실태 조사결과 최초 계약 대비 40~50%대 수준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사업장도 확인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주택에 대해 시공사가 유독 큰 폭의 공사비를 증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애초 계약 당시 현실 물가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과도하게 저렴한 분담금을 허위·과장 광고를 해서다.
서울 C지주택의 한 조합원은 “계약 당시 ‘00지역 시세대비 절반가’, ‘100% 당첨, 환불’이라는 광고 문구만 믿고 가입을 했다”며 “하지만 착공을 앞두고 예상보다 1억원 가까이 돈을 더 내라고 하는데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최진 국토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지주택 공사비는 계약 이후 협의를 통해 사후 확정하는 구조라 준공이나 입주 직전 시공사가 대규모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 분쟁 발생 빈도가 높다”며 “합리적인 공사비 산정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와 서울시도 이 부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최근 공사비 증액 문제에 대해 표준계약서 도입 방안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공고한 상태다. 시공사가 공사비를 증액하는데 있어 기준이 될 표준계약서를 사전에 제시하면 분쟁이 덜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효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 보다 구체적인 표준안이 제시돼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 정비사업에서도 공사비 분쟁시 표준계약서는 실효성이 없는데 지주택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다양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부터 실태 파악에 들어간 국토부는 내달까지 전국 사업장 조사를 마치고 분쟁이 발생한 곳에 대해서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특별점검을 진행해 중재·조정을 지원한단 방침이다.
당장은 지주택 인허가 절차 검증부터 강화될 예정이다. 최근 국토부 및 서울시는 관할 지자체 실무부서에 지역주택조합사업 인가 과정에서의 자격요건을 면밀히 검토하라는 내용의 방침을 내렸다. 국토부는 “점검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중재와 개선 방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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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집 지을 땅 확보부터 ‘진땀’…“제도적 한계 직면”
사실 지주택은 ‘토지 미확보’로 시작하다 보니 첫 삽을 뜨는 사업장 자체도 적을뿐더러, 착공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일반 정비사업장에 비해 오래 걸린다.
현재 서울에서 지주택 사업을 진행 중인 118곳 중 착공까지 간 곳은 14곳뿐이다. 그나마 이 14곳조차도 조합원 모집에서 착공까지 평균 기간은 11년으로 일반 정비사업(정비구역 지정에서 착공까지)의 6~8년에 비하면 긴 기간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이 나서도 토지 소유주를 설득해 토지를 보상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힘든데 지주택은 개인들이 모여 토지를 확보하는 일부터 진행하다 보니, 사소한 변수에도 사업이 무산될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미 확보된 토지조차도 토지 소유주들의 마음이 바뀌며 미확보로 전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C 지주택 조합원은 “지주택 조합원 모집 조건인 50% 토지를 확보했다고 해서 조합에 가입했는데, 조합원 모집 이후 토지소유주들이 마음이 바뀌면서 토지 확보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이를 조합 측에선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D지주택 조합원은 “탈퇴를 요청했으나 업무추진비 등을 명목으로 받아간 금액에서는 극히 일부만 돌려줄 수 있다더라.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끊기더니 파산했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토지 확보 비율을 절반이 아닌 확연히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토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원 모집을 시작하는 구조 자체가 잘못됐다. 토지 확보는 주택 설립을 위한 기초작업인데 기초작업부터 불안해지면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며 “토지를 100% 확보한 이후에야 조합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지 소유주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땅을 매입해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상은 재개발·재건축보다 현실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사회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