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21세기 대군부인'을 연출한 박준화 감독의 이야기다.
박준화 감독은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종영 인터뷰에서 "결국 모든 것은 내 잘못"이라며 작품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입장을 밝혔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모든 걸 가진 재벌이지만 신분은 고작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슬픈 남자의 운명 개척 신분 타파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특히 대세 아이유와 변우석이 캐스팅돼 기획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하지만 화제성이 높은 만큼 아쉬움도 불거졌다. 특히 지난 15일 방송된 11회에서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즉위식 중 제후국이 사용하는 '천세' 표현과 황제의 십이면류관 대신 제후를 뜻하는 구류면류관이 등장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방송 이후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동북공정'을 자처하는 거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제작진은 방송 이후 "우리나라의 자주적 지위를 훼손한다는 시청자 여러분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는 조선의 예법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발생한 사안"이라고 사과했다.
제작진뿐 아니라 주연 배우인 아이유, 변우석도 사과했다. 아이유는 방송 직후인 16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21세기 대군부인' 단체 관람 이벤트 무대에 올라 "최근에 생각이 많았다. 내가 더 잘했으면 될 일"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박준화 감독은 본격적인 질의응답에 앞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박준화 감독과의 일문일답.
▲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늘 생각했던 것이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그러려고 노력했는데 여러 가지 논란이 내 부족함으로 인해 불거졌다. 시청자 여러분과 많은 분께 이런 자리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변명의 여지가 없고 사과드린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나선 것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함께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함께 고생한 스태프와 연기자 등 모든 분의 부족함보다는, 최종적으로 판단 착오와 실수를 범한 내 연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시청자분들에게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나왔다.
▲ 첫 방송부터 갑론을박이 불거졌지만 판타지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천세' 표현이 불씨를 당겼다.
= '21세기 대군부인' 스토리의 시작은 왕실과 평민의 로맨스를 그리려는 의도였다. 그 안에서 일제강점기나 분단과 같은 시대의 큰 아픔이 기억 없이 조선 왕조가 쭉 이어져 온 형태로 설정을 짜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굳건한 나라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 지위와 관계를 떠나 극 중 희주처럼 외롭고 인정 욕구가 있는 친구가, 위치만 있을 뿐 일상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대군을 만나 펼치는 로맨스에 집중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조선 왕조의 역사를 현대와 연결한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고증을 받으며 시작했는데, 왕이 즉위하는 상황을 연출할 때 실제 우리나라의 역사가 존재함에도 판타지적인 설정에만 너무 매몰됐던 것 같다. 우리 역사의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부분만큼은 제대로 표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을 하면서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지만, 마지막의 그 형태(천세)는 최종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 내 무지함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왜 놓쳤을까 싶다. 가장 감동적이어야 할 순간이 가장 불편한 상황으로 표현됐다. 이를 미리 인지하지 못한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 고증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 자문 교수님들이 세심하게 봐주셨다. 다만 극 중 배경이 가상의 허구 세계이다 보니, 고증해 주시는 분들도 우리 역사 속 아픔의 시기를 배제하고 시작해 조선 왕조의 행사 모습만을 남겨두고 설계하셨다. 실제 역사에는 대한제국이 있고 주도적인 모습을 통해 얻어낸 가치들이 있는데, 허구의 설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를 깊이 있게 녹여내지 못했다. 좀 더 무겁게 고민하면서 접했어야 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고민해야 하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하지만 연출가 입장에서 올바른 판단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디테일을 놓친 것이기에 어떤 변명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 조선 왕조를 따른다고 했지만, 실제 조선의 위계를 무시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 스토리상 어렵게 다가간 부분은 대군이 섭정을 한다는 설정이었다. 그게 극 초반의 핵심 갈등이었는데 상황과 관계성이 시청자들에게 잘 설명되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내가 잘 몰랐던 탓이다. 판타지 안에서 이야기를 표현하다 보니 고증과 자문을 해주시는 분들도 가상의 설정이라는 점 때문에 다소 가볍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적 허용 안에서 극적인 요소로 가미한 것이라 판단하셨던 것 같은데, 연출자인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검수했어야 했다.
▲ 판타지와 역사적 현실 사이에서 연출 기준을 어떻게 잡았나.
= 이 작품은 프리프로덕션 단계가 오래 지속되어야 했는데 가상 세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인적으로 연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현시대에 왕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당위성을 시청자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왕이라는 계층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기에 어느 정도까지 신분제를 희석하고 설득해야 할지 기준을 빨리 잡아야 했다. 판타지 드라마는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결과적으로 시청자를 온전히 설득해내지 못한 것은 연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유지원 작가와는 이 논란 이후 어떤 대화를 나눴나.
= 작가님이 신인이다 보니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스스로 순정만화 같은 아름다운 로맨스를 그리고 싶어 했다. 시대의 아픔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관계성에 집중하고자 조선 왕조의 흐름을 차용했던 것인데, 현재 논란에 대해 본인도 무척 아쉬워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스스로 잘못한 것 같다며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 아이유, 변우석 등 배우들이 친필 사과문까지 게재했는데 배우들과는 이야기를 나눠봤나.
= 배우들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출자로서 책임감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배우들은 주어진 대본과 스토리를 최선 다해 표현하는 직업인데, 내게 먼저 사과문을 올리겠다고 말해줘서 너무 미안했다. 좀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밤낮으로 고생한 배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 노력이 논란에 묻혀 온전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연출자로서 가장 안타깝다.
▲ 혹시 대중의 오해 중 정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 평소 연출할 때 연기자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리 드라마는 대본 지문에 감정 묘사가 굉장히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대사와 지문의 감정이 어긋나는 부분들은 현장에서 조율해 나갔다. 이번 작품을 시작하면서 이지은(아이유) 배우가 맡은 성희주 캐릭터가 자칫 악녀처럼 보이고 호감 포인트가 없어 보일 수 있어 다채로운 욕망 속에 허당 같은 면모를 섞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안대군 역의 변우석 배우에게는 캐릭터의 아픔과 진지함이 크니 다른 매력들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촬영할 때는 연기자가 편하게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늘 밝은 현장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메이킹 영상의 단편적인 모습들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염려스러운 마음은 있다.
▲ 배우들의 연기 합이나 케미가 다소 부족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 가상의 설정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인물 간의 간극을 둘 때 왕과 대비 같은 경우는 전통적인 사극 톤을 유지하도록 했다. 반면 대군은 전통과 현실의 중간 지점의 톤을 잡았고, 권한이 많은 인물 특성상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도록 연출했다. 반면 성희주는 극단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 그 욕망을 강하게 강조해 줘야 대비와의 캐릭터적 대립이 명확해질 것이라 판단했다. 초반에는 시청자분들이 다소 낯설게 느끼실 수 있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기에는 이 같은 톤 조절이 유리할 것이라 보았다.
▲ 일각에서는 일본, 중국 등 해외 자본 유입으로 인해 의도적인 역사 왜곡 설정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 자본 유입의 구체적인 관계까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연출가로서 이 드라마를 만들며 한 번도 특정 국가의 자본이나 문화를 의식해 본 적이 없다. 논란이 된 무도회 장면 등은 유럽 왕실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같은 무드를 참고한 것이다. 신인 작가님의 글을 보고 순정만화 같다고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문화라 무도회 장면 촬영이 가장 힘들었는데, 근거 없는 외부 자본 오해로 번진 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향후 작품을 다시 수정하거나 보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싶나.
= 만약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문 위원단을 한가지 방향에 매몰되지 않도록 연령대와 분야별로 더욱 다채롭게 구성할 것이다.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업계 전문가들까지 함께 모여 고민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근본적으로 작품의 서사 자체가 빈약했던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 연출자로서 풍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제작 환경상 아쉬운 부분이 많은데 어찌 보면 신인 작가님과 함께 극을 완성해 가기에는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올해 3월에 연출로 합류했다. 촬영을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 촬영을 고작 2개월 앞두고 합류한 것이라면 연출가로서 손쓸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 아닌가.
= 어떤 상황이었든 간에 최종 연출자로 참여해 결과물을 낸 것이기에 전부 내 책임이 맞다.
▲ 향후 재편집 방향이나 플랫폼과의 논의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나.
= 여전히 다각도로 논의 중이다. 내가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시청자분들이 부정적으로 느끼신 부분들이 향후 착실하게 수정 및 보완되어 서비스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여러 논란 속에서도 시청률 13%를 기록했다. 끝까지 재밌게 본 시청자들까지 비판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저 즐겁게 봐주시길 바랐는데 마음이 무겁다. 최근 교양 PD 시절 함께했던 MC분에게 26년 만에 연락을 받았다.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데 운동하다가 우연히 영상을 보고 어릴 적 읽던 순정만화의 감성이 떠올라 힐링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연출자로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최근 숏폼 영상에서 한 어르신이 극 중 프러포즈와 무도회 장면을 보며 감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울컥하며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감동을 온전히 이어갔어야 했는데 내 부족함으로 인해 대중에게 불편함을 안겨드려 시청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후회와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 이번 논란이 앞으로의 연출 인생에 큰 분기점이 될 것 같다.
=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모두 훌륭했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작업하고 싶은 매력적인 분들이다. 이 작품을 선택했던 이유는 젊고 신선한 감각의 결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맨스 장르를 많이 연출해 오면서 내가 가진 설렘의 코드가 지금 세대의 시청자들과 맞닿아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4회까지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설레지 않는 신선한 전개 방식에 매료됐다.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하더라도 이번 경험을 거울삼아 철저히 고증하고 새로움을 반영해 시청자들에게 더욱 신뢰받을 수 있는 건강한 작품을 만들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2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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