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작년 말 주요국 2위(91.7%)일 정도로 빚에 짓눌린 경제 구조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가계대출 증가폭은 매달 커지고 있다. 지난달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한 달 만에 6조원 늘어 7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선 열흘 동안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만 2조원 불어났다.
최근 가계대출 급증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급등과 이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확대다. 하지만 가계대출 급증 문제의 책임을 부동산 정책에만 물을 수는 없다. 은행권의 무분별한 대출 공급을 사전에 감독하지 못하고 매번 가계대출 급증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대출 통제에 나서는 금융당국의 땜질식 ‘뒷북’ 감독 책임도 크다.
작년 하반기에도 가계대출이 역대급으로 불어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금융당국은 당시 은행권에 ‘자율적’인 투기 수요 차단을 지시했다. 대형 은행들은 다주택자 대상의 주담대 공급을 중단하고, 갭투자에 활용되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차단하는 등의 대출 제한 조치를 저마다 내놨다. 은행별 대출 빗장이 제각각인 탓에 소비자 불편이 컸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은행권에 대한 자율적 대출 제한 지침은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올 들어 해가 바뀌자마자 작년 말까지 이어졌던 관리·감독 기조가 완전히 잊혔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지난 1월부터 곧장 대출 제한 조치를 풀었다. 불과 2~3개월 전에 “투기를 차단하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대출을 공급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은 모두 잊고 다주택자 주담대도 풀고, 조건부 전세대출도 허용했다.
은행권이 대출 제한 조치를 완화한 가운데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맞물리면서 4월부터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대출 신청이 급증한 것을 알면서도 주요 시중은행은 4~5월 대출 요건을 더욱 완화했다.
지난해 이뤄진 은행권의 대출 제한 조치가 꾸준히 유지됐다면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금융당국은 ‘7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를 앞두고 있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가 가계대출 관리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달 16일 전국 은행의 부행장을 소집해 다시 ‘자율 조치’를 당부했다. 이미 가계대출이 집값을 밀어 올리고, 오른 집값 때문에 다시 가계대출이 불어나는 악순환이 부동산 시장에 ‘FOMO(포모·시장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심리)’로 이어진 한참 후에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