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그린워싱, 모르면 '빨간 줄' 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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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그린워싱, 모르면 '빨간 줄' 그어진다

“멸종 위기종인 펭귄 그림을 생수병에 넣는 것도 안 된다니 조심해야겠네요.”(한 대기업 직원)

11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지하 2층 회의실은 100여 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및 광고 홍보 담당 임직원들로 가득 찼다. 국내외 ‘그린워싱’ 적발 사례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린워싱은 ‘녹색’(그린)과 ‘위장’(화이트 워싱)의 합성어다. 친환경 제품이 아닌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표시·광고하는 걸 말한다. 국내외 많은 기업이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겨냥해 그린워싱에 나서자 각국이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에선 이미 몇 차례 문제가 됐다. 로열더치셸은 나무심기 사업으로 탄소를 흡수한다는 광고를 냈다가 네덜란드 광고심의위원회로부터 2021년 8월 “석유를 쓰면서도 탄소중립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 월마트는 합성섬유 제품을 대나무로 만든 제품인 것처럼 광고했다가 2022년 300만달러 벌금을 받았다. 오스트리아항공은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량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탄소중립 비행을 한다고 광고했다가 2023년 6월 불공정경쟁방위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해양 유입 플라스틱 50% 사용’ 등 그린워싱 사례가 여럿 나왔다. 법무법인 화우에 따르면 2020년 110건이었던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지난해 2528건으로 급증했다.

이러다 보니 규제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를 가장 먼저 시작한 EU는 친환경 기업이란 걸 알리려면 제품 생애주기에 걸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그린 클레임 지침’을 2023년 통과시켰다. 이를 위반하면 연 매출의 최소 4% 이상을 벌금으로 내고, 공공 자금 조달이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1년간 제외되는 등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EU에 수많은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대응은 미흡한 편이다. 대한상의가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는 그린워싱 개념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담 부서가 없는 기업은 61%에 달했다.

이제 우리 기업도 그린워싱 대응을 늦출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국내에서도 ESG 기조는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상장기업 대상 ESG 공시 의무화,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업계에선 그린워싱 규제도 조만간 구체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기업도 이제 그린워싱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부 검증 체계를 만들 때가 됐다. 우리 기업들은 그린워싱으로 한 번 ‘빨간 줄’이 그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시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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