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에 비친 트럼프 속내…"호르무즈 봉쇄 안 풀려도 군사작전 종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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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3.31 15:41 수정2026.03.31 16:12

지난 11일 오만 무산담과 접경지인 아랍에미리트(UAE) 라스 알 하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의 화물선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1일 오만 무산담과 접경지인 아랍에미리트(UAE) 라스 알 하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의 화물선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지역 원유와 가스 등의 핵심 수출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종료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시간) 복수의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상태로 유지되더라도 이란에 대한 미군의 군사작전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 내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작전을 한다면 당초 계획했던 것(4~6주)보다 분쟁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해군을 약화시키고 미사일 재고를 줄이는 것과 외교적으로 이란에 압력을 가해서 자유로운 무역 흐름을 재개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주요 목표라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외교적으로 압박해서 호르무즈를 열지 못한다면, 유럽과 걸프 지역의 동맹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WSJ에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이 호르무즈 봉쇄 해제의 책임을 유럽과 걸프지역 국가들에 떠넘기고 빠져나가겠다는 뜻이나 다름 없다. 기사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용 국가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하면 한국 중국 일본의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 전문가인 수전 말로니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은 WSJ에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기 전에 미국이 군사작전을 끝내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에너지 시장은 본질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해협 폐쇄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악화될 경제적 피해에서 미국만을 떼어내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1990년대 초 걸프전의 사례를 들어 중동국가 등에 이번 전쟁 비용을 분담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과거 걸프전처럼 아랍 국가들이 이란 전쟁 비용을 낼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데 상당히 관심이 있을 것이다"고 답했다. 미국은 1990~1991년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 후 아랍 국가들로부터 상당 비용을 충당 받았다.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이 1992년 의회에 보고한 걸프전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등 6개국은 이 전쟁에 들어간 비용 610억달러 중 540억달러(88%)를 부담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의 부담은 12%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약속이 전부 지켜지지는 않았으며, 실제 집행된 금액은 약 505억달러였다.

측근에 비친 트럼프 속내…"호르무즈 봉쇄 안 풀려도 군사작전 종료"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이란은 자체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IRIB)은 국방안보위원회 소속 의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의 발언을 인용해 위원회가 통과하는 선박에 이란 리알화로 통행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미 이란은 일부 선박에 200만달러(약 30억원)를 내고 통행을 허가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이런 조치가 아예 제도화될 전망이다.

해당 법안은 미국과 시오니즘 국가(이스라엘) 선박의 통행을 금지하고, 이란에 제재를 가하는 다른 나라들의 선박 통행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이 종전을 위해 내건 협상안에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과 유엔과 미국 등의 제재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서 통행료 부과가 금지된 국제 해협이다. 이란은 1982년 이 협약에 서명했지만 비준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이 협약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란에 이런 협약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데다, 미국까지 발을 뺄 경우 통행세 체제가 실제로 성립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호르무즈 통과 물량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에너지 비용을 상승시킬 전망이다.

해당 법안이 자국 통화를 결제 수단으로 지정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통행세 부과가 실제로 이뤄지고, 이를 위해 이란 리알화를 각국이 확보해야 할 경우 이는 이란에 대한 경제 및 금융 제재가 일정부분 해제되는 효과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 등의 대체통화가 함께 사용될 수도 있다. 이는 지금까지 석유 거래시 미국 달러를 사용함으로써 미국이 만들어 온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고 미국 중심의 금융 체계에도 상당한 균열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가스 에너지의 20% 가량이 통과하는 핵심 요충지다. 하지만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운항 횟수는 약 95% 급감한 상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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