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열리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영화가 대거 초청됐다. 한국 영화는 12년 만에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 UGC몽마르스극장에서 올해 영화제에서 선보일 60편의 초청작을 공개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역대 최다인 2909편의 장편영화 출품작이 접수됐다”며 “세계 영화인의 높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부문에는 19편이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많이 초청받은 게 특징이다. 전쟁, 전염병, 기후위기, 자연재해 등 갈등과 위기가 일상화한 시대적 흐름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성 노동자,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명해온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난해와 비슷한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두 검사’가 단적인 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소련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강력한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타릭 살레의 ‘공화국의 독수리들’,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서 탄압을 피해 도망치는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첩보원’도 결이 비슷하다. 프랑스 감독인 합시아 헤지의 ‘마지막 소녀’는 종교적·성적 소수자인 여성이 저항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1999년과 2005년에 ‘로제타’와 ‘더 차일드’로 칸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장피에르·뤼크 다르덴 형제는 올해 젊은 엄마들의 쉼터를 배경으로 하는 ‘젊은 어머니들’로 10번째 칸 경쟁부문 후보에 들었다. 아리 애스터와 카를라 시몬 등 1980년대생 신예 감독들도 거장들과 어깨를 견주게 됐다. ‘미드소마’ 등 장르 영화로 유명한 애스터 감독은 네 번째 장편 ‘에딩턴’을 후보에 올렸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시몬은 가족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10대 소녀의 이야기 ‘로멜리아’를 선보인다.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출품된 작품 중에는 아키놀라 데이비스 주니어 감독이 연출한 ‘나의 아버지의 그림자’가 눈에 띈다. 칸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첫 나이지리아 영화다. 1990년대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를 가로지르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없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이 출품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청작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비경쟁 부문 진출에 모두 실패한 건 2013년 이후 12년 만이다.
한국 영화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찍었다. 2022년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고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을 받은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년간 경쟁 부문에서 초청작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어쩔 수가 없다’는 후반 작업 일정으로 출품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칸영화제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2000년대 들어 매년 많게는 3~4편 한국 영화를 소개해왔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칸영화제는 다음달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프랑스 국민배우인 쥘리에트 비노슈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