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복간, 웹툰 플랫폼선 쇼츠 서비스… “고우영 만화 재조명”

5 hours ago 3

고우영 화백 타계 20주기
‘삼국지’ ‘서유기’ 등 40여 작품 남겨… 전자책 발간-플랫폼 펀딩 등 활발
“고전과 민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만화를 ‘사회 비추는 수단’ 끌어올려”

올해 고우영 화백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그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암 투병 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고인의 생전 모습. ㈜고우영 제공

올해 고우영 화백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그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암 투병 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고인의 생전 모습. ㈜고우영 제공
듬직한 체구의 한 남자가 한 손엔 창을, 다른 손엔 술이 담긴 호리병을 들었다. ‘고리 눈’에 입가를 따라 촘촘하게 바늘처럼 돋은 호랑이 수염.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 ‘장비’의 모습이다. 장비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삼국지의 만화 캐릭터를 그린 이. 한국 만화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故) 고우영 화백(1938∼2005)이 올해 타계 20주기(지난달 25일)를 맞았다.

대표작 ‘고우영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고우영 제공

대표작 ‘고우영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고우영 제공
1938년 만주 본계호(本溪湖)에서 태어난 고 화백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국지’와 ‘십팔사략’ ‘수호지’ ‘열국지’ ‘임꺽정’ ‘일지매’ ‘서유기’ 등 40여 작품을 남겼다. 1953년 15세에 부산 피란 시절 ‘쥐돌이’로 데뷔한 그는 만화를 사회상을 비추는 표현 수단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근 고 화백의 타계 20주기에 맞춰 절판됐던 그의 작품을 복간하는 등 고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 “고우영, 만화가 뭔지 알게 해 줘”

최근 복간된 고우영 ‘열국지’. ㈜고우영 제공

최근 복간된 고우영 ‘열국지’. ㈜고우영 제공
고인의 작품 중 17종의 출판권을 보유한 문학동네는 지난달 23일 ‘일지매’를 전자책으로 내는 등 여러 작품을 순차적으로 복간하고 있다. 쌤앤파커스는 ‘서유기’ 복간을 위해 4일부터 와디즈 플랫폼 펀딩에 나섰는데, 이미 목표 금액을 훌쩍 넘겼다. 흑백 원고를 일부 채색한 담채판도 제작했다. ‘서유기’는 2010년쯤부터 사실상 절판돼 현재 중고 거래로만 거래되고 있다.

복간을 위해 펀딩 중인 ‘서유기’. ㈜고우영 제공

복간을 위해 펀딩 중인 ‘서유기’. ㈜고우영 제공
젊은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새로운 플랫폼과의 만남도 이뤄진다. 고 화백의 유족이 세운 ‘㈜고우영’은 네이버웹툰이 새롭게 도입하는 쇼츠 서비스 ‘컷츠’에 ‘서유기’ 전편을 올릴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원화 스캔본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효과음과 음성도 넣는다. 고 화백의 필체로 만든 ‘고우영체’도 무료 배포 중이다.

청강문화산업대는 3월 20일부터 전시 ‘우리시대 이야기꾼 고우영’을 열고 있다. 만화가 조석은 전시에 보낸 축전에서 “어린 시절 만화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작품이 ‘삼국지’와 ‘십팔사략’”이라고 했다. 강풀도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그 감각에 혀를 내두를 만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야기꾼

고 화백이 그린 원화와 스케치를 작품별로 모은 상자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 화백이 그린 원화와 스케치를 작품별로 모은 상자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주식회사 고우영이 보관 중인 고우영 화백의 옛 작품들. 고 화백이 데뷔 초 쓰던 필명 ‘추동성’이 적혀 있는 것도 있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주식회사 고우영이 보관 중인 고우영 화백의 옛 작품들. 고 화백이 데뷔 초 쓰던 필명 ‘추동성’이 적혀 있는 것도 있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9일 둘러본 경기 파주시 출판단지의 ㈜고우영은 문을 열자마자 헌책방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곳은 고 화백의 작품 원본과 스케치를 다수 보관하고 있다. 상자를 여니 가로 26.5㎝, 세로 39.3㎝ 하드보드지 원화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고우영 삼국지’ 원화.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우영 삼국지’ 원화.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삼국지 ‘인물 도감’.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삼국지 ‘인물 도감’.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 화백의 필체로 채운 말풍선과 화이트로 수정한 자국도 그대로였다. 가로 6칸, 세로 7칸에 삼국지 등장인물을 그린 ‘인물 도감’도 있었다. ㈜고우영의 신명환 대표(만화가)는 “(고인은) 작중 인물이 죽으면 도감 위에 ‘X’자 표시를 남겼다”며 “인물이 이렇게 많은데 한 명도 중복되는 캐릭터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에 고우영을 다시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신 대표는 각색의 묘미를 강조하며 “선생님은 고전과 민담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꾼”이라며 “지금도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 작품을 반드시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식회사 고우영이 보관 중인 작품 원화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주식회사 고우영이 보관 중인 작품 원화들. 파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고 화백은 국내 만화에서 작가가 작품에 개입하는 연출을 도입하기도 했다. ‘삼국지’ 유비를 본인과 닮게 그렸고, ‘열국지’ 마지막 장면에선 천하통일을 마무리한 진시황이 “이제 좀 쉬자”며 모자를 벗고 수염을 떼자 고 화백 본인이 나타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지난해 프랑스 파리 올림픽 당시 퐁피두센터에서 열렸던 만화 전시에서 한국 작품은 없었던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K웹툰이 유명하다고 해도 어떤 분야든 계보를 아는 게 기본이겠지요. 해외 만화 평론가들, 연구자들이 알 수 있도록 고 화백의 작품을 비롯해 우리 만화 문화유산의 번역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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