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외국인에 증시 개방, '저PER株 발굴' 앞장섰지만…실적 개선없자 韓시장 떠나
1992년 1월 3일,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처음으로 직접 개방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국내 증시는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수급이나 재료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가치평가 지표도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저평가된 한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했고, PER 1~2배 수준의 섬유·농약·시멘트 업종 등의 종목들이 집중적인 매수 대상이 되면서 일부는 주가가 10배 이상 상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시장에서는 이를 '저(低)PER주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듬해에는 투자 시각이 한 단계 발전해 자산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삼부토건과 만호제강 등 풍부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재평가를 받으며 큰 폭으로 상승했고, 숨겨진 기업가치를 찾는 투자 문화가 확산됐다. 그러나 화려한 랠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실적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가 뒷받침되지 못한 기업들은 결국 제자리로 회귀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바뀌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해묵은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시험대를 거치며 이 문제들이 한꺼번에 불거졌고,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가 경쟁국보다 만성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용어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주가가 싼 현상이 아니다.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정책, 산업구조, 자본시장의 신뢰도, 지정학적 위험 그리고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 기업 전체의 밸류에이션을 낮추는 구조적 문제를 의미한다. 결국 이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1992년 시장 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누적된 자본시장의 질곡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책임경영이 정착돼야 하며 주주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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