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 공공외교의 전략적 한류 자산, 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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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기 美오번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천명기 美오번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방문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대기업 회의실도, 정부 청사도 아니었다. 그는 서울의 PC방인 T1 베이스캠프를 찾아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과 T1 선수단을 만났다.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끄는 기업가가 한국에서 PC방과 e스포츠를 주목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장면이 아니다. 이 장면은 한국의 게임문화와 e스포츠, AI, 청년문화가 하나의 디지털 한류 서사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랫동안 게임을 양가적으로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과몰입과 사행성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이 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산업의 수출과 프로게이머의 국제적 성취, e스포츠 강국이라는 위상을 자랑해 왔다. 이제는 이 이중적 시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게임의 문제를 외면하자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e스포츠를 한국의 전략적 문화 자산이자 공공외교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갖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시대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e스포츠의 훈련 시스템과 프로게이머 문화, 팬덤을 세계에 보여준 나라다. 특히 PC방은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과 청년문화, 디지털 사회성이 결합된 한국식 디지털 문화의 실험장이었다. 한국 e스포츠는 이 공간에서 성장해 글로벌 팬덤과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 확장됐다.

이 지점에서 e스포츠는 한류의 다음 장면이다. K팝과 드라마가 한국을 감각적 문화국가로 보여줬다면, e스포츠는 한국을 빠르고 전략적인 디지털 국가로 인식하게 만든다. 더 중요한 점은 e스포츠가 참여형 한류라는 사실이다.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의 공동 생산자다. 공공외교가 해외 공중과의 지속적 관계 형성이라면, e스포츠는 그 관계를 디지털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플랫폼이다.

게임과 e스포츠는 더 이상 일부 청소년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디지털 산업과 글로벌 청년문화가 만나는 전략적 공간이 되었다. 해외 청년들은 이미 게임과 스트리밍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이 e스포츠를 공공외교 자산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은 자본과 플랫폼, 게임 IP, 미디어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은 거대한 게임시장과 스트리밍 플랫폼을 기반으로 미디어 비즈니스를 키우고 있고, 중국은 내수시장과 자본을, 중동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앞세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 선수와 팀, 팬덤을 보유했지만 글로벌 플랫폼과 리그 수익화, 장기적 미디어 전략에서는 충분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우리가 원조다”라는 말은 자부심은 될 수 있지만 전략은 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e스포츠의 과제는 세계 최고 선수를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성취를 디지털 문화와 청년외교, 기술 이미지, 윤리적 거버넌스와 연결해 지속 가능한 공공외교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e스포츠를 게임산업 정책이 아닌 문화외교와 청년교류, 디지털 공공외교의 관점에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해외 한국문화원과 대사관은 e스포츠를 한국어, K팝, 웹툰, 음식, 관광과 연계한 복합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활용해야 한다. 둘째, 대학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국제 e스포츠 캠프와 디지털 리더십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코리아센터와 코리아 코너, 세종어학당 인프라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셋째, 선수 보호와 공정한 리그 운영, 과몰입 예방, 디지털 윤리를 한국 e스포츠의 브랜드 가치로 삼아야 한다. 승리만으로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다. 책임 있는 디지털 문화라는 신뢰를 구축할 때 한국 e스포츠는 더욱 강한 소프트파워가 될 수 있다.

젠슨 황의 PC방 방문은 하나의 상징이다. 한국의 디지털 문화가 글로벌 기술산업과 문화외교가 만나는 접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류의 미래는 노래와 드라마에만 있지 않다. 디지털 공간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며 함께 참여하는 문화 경험 속에서도 만들어진다. e스포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한국이 e스포츠를 책임 있는 디지털 문화로 제도화하고 공공외교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면, PC방에서 시작된 한국의 디지털 문화는 세계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외교 언어가 될 수 있다.

천명기 미국 오번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mzc0113@aubur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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