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속 사자 사냥[임용한의 전쟁사]〈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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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시리아 영토가 최대 판도였을 때의 왕은 아슈르바니팔이었다. 그는 가장 풍족했던 왕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니네베를 세우고, 이전에 없던 수도와 궁전을 물려줬다. 아슈르바니팔은 궁전을 추가로 지었고, 정복하는 나라마다 왕의 딸을 후궁으로 들였다. 그의 모습을 새긴 부조를 보면 그는 어떤 역대 제왕보다도 멋지고 정교한 자수를 새긴 제복을 입고 있다. 옷이 아니라 부조가 역대급으로 정교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시대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그는 철권통치밖에 몰랐던 선조들과 다르게 문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 군주이기도 했다. 그는 니네베에 대도서관을 짓고, 이전 제국의 역사와 문서를 모조리 모았다. 우리가 수메르의 역사를 알고 함무라비 법전이 4000년 가까운 시간을 생존해 우리에게 전해진 건, 이 대도서관 덕분이다.

아시리아 왕들의 별난 의무가 야수 사냥이었다. 왕들은 군사들과 함께 수많은 야수를 사냥해야 했다. 그중 압권이 사자 사냥이었다. 투우사처럼 사자와 대결을 벌여 사자를 죽이는 것도 전통이었다. 아슈르바니팔은 수도에 거대한 콜로세움을 짓고, 관객들 앞에서 사자 사냥을 했다. 진정한 문무 겸비의 제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제국은 그가 사망하자마자 멸망하고 말았다. 메디아의 침입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계기적인 사건이다. 거대 제국의 붕괴에는 반드시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제국 내부가 만신창이였다. 선대왕들이 너무나 자주 강제 이주책을 시행해 제국 내부에 불만세력을 잔뜩 심어 놓았다. 콜로세움의 사자 사냥도 하나의 단서다. 선왕들의 사자 사냥은 놀이가 아니었다. 왕과 신하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과거의 관습, 가치관,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증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제국도 아닌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콜로세움에서 놀고 있다. 본인들은 생사를 건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느끼는 모양이지만, 나라와 백성의 운명은 콜로세움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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