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이어 밴 클라이번도...우승자 아시아 공연 기획자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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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방 에스비유 대표 단독 인터뷰
오스트리아서 30년간 현지 인맥 놓아
브루크너 페스티벌 한국 주빈국 선정 도와
빈 필 앙상블 기획 제안해 내한 성사
“조성진, 임윤찬 덕분에 ‘K프리미엄’ 생겨”

세상에 콩쿠르는 차고 넘친다.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C)에 가입된 콩쿠르만 120여개. 그 중에서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한 손에 꼽을 만한 대회 중의 대회다. 이 두 대회 각각의 우승자 아시아 투어를 맡은 건 한국 기획사인 에스비유. 유소방 에스비유 대표를 만나 유럽 음악계가 인정하는 마당발이 된 사연에 대해 들어봤다.

by_이주현 기자

퀸 엘리자베스 이어 밴 클라이번도...우승자 아시아 공연 기획자는 한국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유럽의 인구구조에선 더욱 그렇다. 반면 한국은 뒤늦게 클래식 음악 사랑이 한창이다. 인기 피아니스트는 아이돌처럼 열혈 팬을 몰고 다닐 정도다. 한국 공연기획사인 에스비유의 유소방 대표는 유럽 유수 악단과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빈 필하모닉 앙상블, 빈-베블린 필하모닉 체임버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직접 연주자들과 악단을 설득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짜서 한국 방문을 이끌어 낼 정도로 기획력도 출중하다. 그의 노고를 기려 오스트리아 정부가 대통령 금장훈장도 줬을 정도다. 연주자가 아닌 음악계 종사자에겐 이례적인 영광이다.

“아시아 시장 개척하자는 제안 통했죠”

최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도 유 대표는 유럽 악단과의 소통 준비로 분주했다. 에스비유는 올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아시아 협력사로 선정됐다. 이 기획사는 2023년부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아시아 협력사도 맡고 있다. 올해 열리는 핵심 콩쿠르 2개가 모두 유 대표의 손을 거쳐야만 수상자 공연인 ‘위너스 콘서트’가 가능하다. 두 콩쿠르가 올해 피아노를 놓고 나란히 열려 흥행을 놓고 경쟁할 만한 상황에서 모두 유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오는 5월 26~31일, 밴 클라이번은 오는 6월 3~7일 결선을 치른다.

유 대표는 “30년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닦았던 네트워크가 결실을 냈다”며 “그간 쌓아올린 성과가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길 바라는 유럽의 악단들에게 통했다”고 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가 한국 업체를 공식 협력사로 낙점한 건 이번이 최초. 과거엔 독일과 폴란드의 회사가 수상자들의 아시아 공연을 기획했다. 이들 업체는 거점이 아시아에 없다 않다 보니 공연 홍보에 어려움이 따랐다. 콩쿠르 측에선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데에 아쉬움이 컸던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름 모를 아시아 회사에 공연 기획과 홍보를 덜컥 넘겨주기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출처. 밴 클라이번 콩쿠르 홈페이지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출처. 밴 클라이번 콩쿠르 홈페이지

유 대표는 자신이 유럽과 아시아 시장 모두에 친숙하다는 강조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대표 등을 4~5번 만나 협업을 성사시켰어요. 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한국의 피아니스트들이 빈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K프리미엄’ 효과를 누렸죠.”
유 대표는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일본 등에서 위너스 콘서트를 줄줄이 잡아 성과도 입증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의 아시아 투어는 오는 8~11월 한국을 포함한 이들 아시아 국가에서 진행된다. 에스비유는 콩쿠르 우승자가 상하이에서 열리는 중국국제음악축제와 중국 최대 규모 클래식 음악 공연장인 NCPA의 상주 연주자로도 활약할 수 있게 했다.

네 살배기 딸이 만들어 준 비엔나 생활

유 대표가 유럽 악단의 아시아 가교가 된 데엔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를 뒷바라지했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김윤희는 4세에 빈 국립음악원에 입학해 5세부터 헝가리 사바리아 오케스트라 등 유럽 악단과 협연했던 신동이었다. 19세에 빈 국립음악원을 최연소로 졸업한 뒤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다. 유 대표는 빈 국립 음대에서 공부를 하던 동생 집에 당시 4살이던 딸을 데리고 놀러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딸의 바이올린 연주를 보던 빈 국립 음대 교수가 ‘자신이 이 아이를 키우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때가 4월 즈음인데 바로 시험 준비를 해서 그해 6월에 음대 시험에 딸이 합격했죠.”

어린 딸을 타지에 두고 갈 수 없던 유 대표는 빈에 거주하면서 현지 음악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렇게 구축한 인맥은 2016년 꽃을 피웠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브루크너 페스티벌’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주빈국으로 초청됐다. KBS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개막 공연을 맡았다. 2015년엔 중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됐던 상황. 이 페스티벌과 함께 열리는 ‘린츠 국제성악콩쿠르’에서 2014년부터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던 유 대표가 당시 브루크너 페스티벌 총감독을 만나 “아시아에선 한국이 클래식 음악 강국”이라고 설득했던 게 통했다. 젊은 시절 롯데관광에서 해외기획을 담당했던 경험, 제주MBC, KBS 등에서 리포터로 활약했던 경험도 공연 기획에 자양분이 됐다.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당시 우승자였던 첼리스트 최하영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출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홈페이지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당시 우승자였던 첼리스트 최하영이 연주하고 있다. / 사진출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홈페이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협업의 물꼬를 튼 데에도 딸이 힘이 됐다.
“2016년 딸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접촉해서 이 공연을 한국에 알리고 젊은 연주자들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콩쿠르 주최 측에 메일을 네 차례 보낸 끝에 회신이 와서 바로 콩쿠르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가 사무총장을 설득했어요.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자고 제안했더니 ‘자신들도 그러고 싶었는데 못 했다’며 반겨줬죠.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등으로 공연을 확장하게 된 계기였죠.”

“한국 관객 열기에 빈-베를린 체임버도 행복”

유 대표가 돋보이는 부분은 기획력이다. 그는 빈 필에 소규모 앙상블 결성을 제안한 뒤 2017년 이 앙상블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전에 없던 구성으로 내한 공연을 이끌어 낸 사례였다.
“빈 필은 당시 규정으로 신년 음악회 시기를 전후해 14명 이상 연주자가 팀을 이뤄 해외로 가지 못하도록 했어요. 수석들로 연주자 13명을 뽑아 한국에서 순회공연을 할 수 있는 앙상블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게 통했죠. 그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자 이 앙상블은 2년 주기로 내한 공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빈-베를린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내한도 이끌어냈다. 구미, 울산 등 서울만큼 문화 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지방에서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선보이려 했던 노력이 먹혀들었다. 유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대형 악단 공연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건 현실적으로 부담”이라며 “소규모로 순회공연을 꾸려 지방에서도 빈 필의 공연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악단의 악장 겸 예술감독인 라이너 호넥에겐 “오늘날 빈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인 당신의 공연을 고대하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설득했다.

퀸 엘리자베스 이어 밴 클라이번도...우승자 아시아 공연 기획자는 한국인

유럽의 악단들이 내한 공연에 호의적이었던 데엔 한국 관객들의 남다른 열기가 한몫했다.
“유럽 악단들은 고령화에 직면해 젊은 관객층도 40~50대인데, 한국은 클래식 음악 공연장의 관객 연령대가 다양해요. 젊은 관객들의 열광은 공연의 수준도 끌어올립니다. 연주자들이 말하길 ‘눈을 감고 있어도 열띤 분위기가 느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빈-베를린 필하모닉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지난 2월 3일부터 9일까지 매일 공연하는 강행군에도 굉장히 행복해 했어요.”

“중국 음악계와 교류 늘리고 싶다”

에스비유는 다른 유럽 악단들의 체임버 내한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올 7월엔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단원들이 결성한 실내악단인 카메라타 RCO의 내한 공연이 있다. 유 대표는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도 수석들을 가려 20명 이상이 참여하는 체임버를 꾸린 뒤 내년 7월에 내한 공연을 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중국 클래식 음악계와 교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유럽과 미국의 음대에서 중국인 다수가 활약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게 유 대표의 생각이다.
"중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관람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 음악가와 협연 기회를 늘리면 한국 음악가도 중국에서 더 많은 공연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국내에선 2027년 제주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들어설 예정인 제주음악당을 주목하고 있다. 유 대표는 학창 시절을 보냈던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지금도 빈, 서울, 제주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제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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