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최초의 야심작으로 내놓은 5,000억달러(709조원) 규모의 AI인프라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3개월 넘도록 자금 조달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에 따른 경제적 위험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불투명해진 때문이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1월 21일 발표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현재 3개월 넘게 프로젝트 파이낸싱 템플릿이 발표되지 않았다. 또 은행, 사모펀드 투자자, 자산운용사들과의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1월 21일 트럼프 취임 다음 날 백악관에서의 발표 당시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회장과 오픈AI 공동 창업자 샘 올트만은 1,000억 달러를 즉시 투자하고 향후 약 5,000억달러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미즈호, JP 모건,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브룩필드 애셋 매니지먼트 등 수십 개의 대출 기관 및 대체 자산 운용사와의 예비 협상이 올해 초 시작됐다. 그러나 경제 변동성 확대와 중국 딥시크 쇼크 이후 AI 서비스 가격 급락으로 금융권이 데이터 센터를 재평가하면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가 블룸버그에 밝혔다.
이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무역 정책으로 기업들의 재무 전망이 불투명해졌음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출 기관과 채권 투자자들이 고위험 투자를 기피하고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른 데이터 센터 수요 전망도 불확실해진 것이 AI 관련 논의를 교착 상태에 빠뜨렸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발 딥시크가 저렴한 AI모델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서 AI와 관련된 프로젝트의 장기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스타게이트의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소프트뱅크는 비전 펀드 스타트업 투자 부서 내에 20~30명으로 구성된 팀을 구성하여 스타게이트에 집중하고 있다. 이 팀에는 비전 펀드에서 자동화 및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투자를 주도했던 아메리카스의 경영파트너 비카스 J 파레크도 포함돼있다.
스타게이트의 투자자로는 오라클과 무바달라의 MGX가 있으나 불확실성이 협상에 부담을 주고 있다.
마이클 엘리아스가 이끄는 TD 코웬 분석가들에 따르면, 서버 랙부터 냉각 시스템, 칩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관세로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이 5%에서 15%까지 상승하게 되면서 사업자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스타게이트에 투자할 예정인 투자자들 또한 과잉 생산에 대한 우려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축소하고 있다. 아마존 웹서비스가 1년만에 가장 저조한 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아마존 역시 데이터 센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축인 오픈AI가 혼란을 겪은 것도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올트먼은 학계와 전직 직원, 한 때 공동 창업자였던 일론 머스크의 소송 등으로 영리 기업으로 전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올트먼은 소프트뱅크가 오픈AI에 대한 300억달러(42조6,100억원)의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픈AI가 영리 기업 전환 계획을 철회한데 대해 최대 주주중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지지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스타게이트의 일부 사업들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트먼은 지난 주 의회 청문회에서 텍사스주 애빌린에 위치한 스타게이트의 첫 번째 데이터센터 부지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오라클이 개발중인 이 단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AI 교육 시설이 될 것이며 발전, 칩 랙, 칩을 아우르는 미국 내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는 애빌린 외에도 스타게이트의 주력 사업지로 활용할 다른 부지를 검토중이다. 소프트뱅크는 전력 접근성과 수요 대비 데이터 처리 용량의 균형, 수익률 등을 감안해 데이터센터를 선정하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67세의 손 회장은 현재 시장 혼란과 투자자의 우려는 장기적인 AI 수요 확대를 감안하면 사소한 문제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컴게스트 자산 운용의 일본 주식 전략 공동 책임자이자 소프트뱅크의 오랜 투자자인 리처드 카이는 소프트뱅크가 이같이 거대한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소수의 글로벌 투자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프트뱅크가 스타게이트에 500억달러를 투자하면 모든 비용이 5~6년안에 충당된 후 약 15~20%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같은 수익률을 거두기 위해서는 적절한 데이터 센터 활용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