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의 리더십 아래 우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당신은 정말 놀라운 일을 해내셨습니다.”(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 지난달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집권 2기 각료회의에서 장관들이 내놓은 낯 뜨거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칭찬이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기자와 만나 이 장면을 언급하더니 “얼굴이 화끈거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말도 덧붙였다. “여기가 대체 미국이냐, 북한이냐.”
‘어른들의 축’ 대신 맹목적 충성파로이 회의는 ‘정책 홍보쇼’ 성격이 짙었다. 그런 만큼 정책 못지않게 작정하고 대통령 띄우기에 나선 게 일견 이해는 된다. 다만 ‘설정’으로만 보기엔 각료들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진지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저들 중 정말 마음에 없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할리우드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장관들의 충성쇼는 이번 내각 구성 당시부터 예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이른바 ‘어른들의 축’으로 불린 관록 있는 관료들이 자신의 결정을 집중 견제해 핵심 정책들이 좌초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2기에선 고난을 함께 겪었거나, 젊고 맹목적인 충성파 위주로 백악관과 내각 요직을 채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사건’ 관련 변호인으로 활동한 젊은 충성파 윌 샤프 백악관 문서담당 비서관, ‘트럼프의 스위스 군용 칼’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4개월의 징역형까지 마다하지 않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고문 등도 ‘찐 충성파’로 꼽힌다.
모래로 쌓은 둑, 작은 충격에도 무너져
대표적인 사례가 자고 나면 바뀔 만큼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 18명이 상업용 앱인 ‘시그널’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파장을 일으킨 ‘시그널 게이트’ 역시 경험, 경륜보다 충성심 위주로 편성한 안보 라인 구성의 난맥상이란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기존 관료 체계를 무시한 채 일방적 예산 삭감·재편을 시도해 공무원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것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한 이들의 헛발질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다양한 시각이나 반론 없이 한 방향으로 의견이 수렴되는 집단사고는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치명적 실책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처럼 직감을 중시하는 인물이라면 더 그렇다.
‘예스맨’ 정부는 단기적으론 신속한 정책 집행과 통일된 메시지 발신을 가능케 해 대통령에게 효율적이란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동조가 반복되면 행정의 전문성은 떨어지고 비효율은 증폭된다. 모래로 쌓은 둑은 작은 충격에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법이다.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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