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 대학가의 '전공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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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 대학가의 '전공 학살'

요즘 중국 대학가에는 전공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다. 학생 모집을 중단했거나 학과를 폐지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베이징대, 칭화대 같은 명문대뿐 아니라 지방대를 포함해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학과 통폐합’이지만 중국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가히 ‘전공 학살’이라고 부를 만하다. 낡은 전공을 과감하게 줄이고 정부가 키우려는 미래 산업 전공을 공격적으로 밀어넣고 있어서다.

최근 5년간 중국 전역 대학에서 학부 전공 1만2200개가 폐지되거나 학생 모집을 중단했다. 그 대신 1만200개의 신규 전공이 개설됐다. 전체 학부 전공의 30% 이상이 구조조정된 셈이다. 올해 대학 모집과 전공 조정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뼈대까지 깎는 '대학 굴기'

베이징이공대 하얼빈공업대 저장대 난징항공항천대 등에선 ‘체화지능(피지컬 AI) 전공’을 새로 만들었다. 상하이자오퉁대는 로봇공학과 무인기술 등을 신규 전공으로 신설해 학생을 모집했다. 칭화대는 뇌·인지과학 전공을, 인민대는 양자정보과학 전공을 도입했다. 베이징사범대는 중국 최초로 승인된 인공지능(AI) 교육 전공을 본격 모집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학의 전공 구조조정은 명확한 방향성을 띠고 있다. 전자상거래, 외국어, 경영 등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른 데다 취업 경쟁력이 약해진 전공을 줄이고 AI, 로봇, 뇌과학, 반도체 등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첨단산업 관련 전공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눈에 띄는 건 전환 속도다. 세계 대학이 모두 AI와 융합 학문의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 대학은 이를 전공 신설과 정원 조정, 연구 조직 재편으로 곧장 제도화하고 있다. 특히 기존 학과의 경계를 허무는 교차학과 신설에 주력하고 있다.

AI가 주류로 올라섰다고 AI 학과만 신설하는 게 아니라 심리학, 뇌과학, 교육학, 로봇, 의학을 함께 묶어 육성하고 있다. 반도체가 중요하면 물리, 화학, 재료, 장비, 공정, 소프트웨어를 연결한 전공에 힘을 실어준다. 도심항공교통(UAM)이 신성장 산업으로 선정되면 항공우주, 통신, 도시 관리, 안전 규제까지 아우르는 교과 체계를 새로 짠다.

산업 재편 맞물린 개혁

물론 신규 전공이 교육 역량을 갖췄는지, 졸업생을 받아줄 노동시장이 열려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가 주도성이 강한 만큼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 다양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전공 구조조정을 대학뿐 아니라 국가 미래 역량 설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필요한 곳에 미리 인재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중국의 전략은 차츰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타임스고등교육(THE)이 발표한 ‘2026 THE 세계 대학 평가’에서 중국 대학 다섯 곳이 세계 40위 안에 들었다. 영국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의 ‘2026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중국 대학 다섯 곳이 ‘톱30’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대학이 산업과 기술보다 늦게 움직여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기존 학과의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 전공 구조조정에 멈칫하는 사이 중국은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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