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대학, 공공기관 사회공헌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장애인·한부모·저소득 아동을 돕는 전통적 기부에서 시작해 해외 청소년 교육, 물·에너지 인프라 구축까지 영역을 넓혔다. 단발성 지원을 넘어 현지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과 임직원·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나눔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 지속가능한 상생 모델로 정착
신한투자증권은 이동 약자를 위한 무장애 지도 제작과 여성 한부모 자립 지원 사업으로 포용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여의도 일대 무장애 지도는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시작됐다. 실제 이용자 의견과 현장 검증을 거쳐 장애인·임산부·노약자의 이동권 보장에 기여했다. 여성 한부모엔 직업 교육과 자격증 취득을 지원해 강사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했고, 지금까지 22명의 강사가 657명의 수강생을 만났다. 회사 관계자는 “단순 생계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지속가능 모델”이라고 말했다.
임직원들도 적극적이다. 매주 금요일을 ‘정기 봉사의 날’로 정해 연간 1만3000시간 이상 봉사에 나서고 있다. 본사에는 청각장애인을 고용한 카페를 열어 일자리 창출과 친환경 소비 확산을 동시에 실천 중이다. 나눔 문화가 사내 전반으로 퍼지며 임직원의 사회적 책임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공공기관 최초로 임직원 참여형 기부 프로그램 ‘사랑의 모금함’을 도입했다. 직원들이 모은 성금은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에 전달된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협력해 저소득 가정 아동에게 농산물 꾸러미와 문화체험을 제공하는 ‘꿈꾸는 꾸러미’ 사업도 운영 중이다. 홍문표 aT 사장은 “사랑의 모금함은 소외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전하는 소중한 통로”라며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기관으로써 ESG 실천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지역아동센터 로컬푸드 급식 제공, 시니어와 이주여성을 연결한 ‘손맛 지킴이’ 프로그램, 장애인체육선수단 창단, 발달장애인 스마트팜 교육, 농촌 일손 돕기, 수해 복구, 김장 나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사회 안전망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 국제 협력과 지속가능 모델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NGO) 굿피플과 한국수자원공사는 필리핀 팜팡가주에서 식수·위생 환경 개선 활동을 펼쳤다. 두 기관 임직원 32명으로 꾸려진 봉사단은 초등학교 네 곳과 원주민 아이따족 마을을 찾아 식수·위생 교육과 노후 시설 보수, 전통문화 체험을 진행했으며 취약계층 가정 255세대에는 식량과 생필품 키트를 전달했다.
연말까지는 팜팡가주 내 초등학교 다섯 곳에 정수 시설과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1만2000여명의 학생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필리핀은 상수도 보급률이 40%에 불과한데, 그중에서도 팜팡가주는 물 부족이 심각한 지역이다. 지하수 오염과 노후화된 수도관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굿피플 관계자는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됐다”며 “깨끗한 물과 위생이라는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과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 청년 자율 봉사와 로컬 연계
삼육대는 여름방학 동안 캄보디아 바탐방에서 ‘에듀브리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중독 예방, ICT 역량 강화라는 세 분야를 중심으로 현지 교원대와 함께 교육 콘텐츠를 개발했다. 중독 예방팀은 스마트폰 과의존 상담을, 교육 기회 제공팀은 아동 중심 수업을 통해 언어 장벽을 낮췄다. 현지 교원대와 협력해 진행한 ‘플러스 IT 프로젝트’에는 50여명의 학생이 참여해 컴퓨터 기초부터 AI·드론 교육까지 단계별 수업을 받았다. IT 박람회인 STEM 페어에서 선보인 드론 코딩 시연은 큰 호응을 얻었다. 삼육대 관계자는 “현지 학교와 협력해 성과를 공유한 만큼 앞으로도 단발성 봉사가 아닌 정례 협력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대 ‘세종나눔봉사단’은 학생이 직접 기획·운영하는 자율 봉사 프로그램으로 26기를 맞았다. 어르신 대상 수세미 제작, 유기견 장난감 만들기, 지역 환경 정화, 헌혈 캠페인 등 생활 밀착형 활동부터 아동센터와 연계한 학습 지원까지 이어오고 있다. 참여 학생에게는 수료증과 장학금이 제공되며, 우수 튜터에게는 상장과 상금도 수여된다. 약 50명 규모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음’은 주민과 외국인 유학생이 함께 무대에 올라 지역사회 문화 기여를 넓히고 있다.
숙명여대는 글로벌과 로컬을 잇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해외 입양아 대상 ‘무지개 캠프’는 학생들이 1년 전부터 수업을 기획하고 리허설을 거듭하며 준비한다. 한국어·전래동화·춤·음악 수업을 통해 입양아의 정체성 탐색을 돕고, 현지 가정과 홈스테이를 통해 가족과 일상을 공유한다. 국내에서는 아동 심리치료 전공 대학원생들이 ‘찾아가는 온마음놀이터’를 운영하며 용산구 아동에게 맞춤형 놀이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해외 봉사와 국내 활동을 학점·장학과 연계해 학생 참여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사회공헌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기업은 ESG, 대학은 청년 자율 봉사, 공공기관은 지역 맞춤형 프로그램 등 각자의 강점을 살려 발전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확산되면 사회 문제 해결은 물론 지역 공동체 회복과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