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만들어진 행정체제
광역 시도간 통합 통해 개편
권역별 거점도시 만들수있어
수직구조인 韓 지방교부세
佛처럼 수평 관계 논의해야
지방의회 효율성 높이기 위해
인구 감소 지역 통합도 필요
인구 감소 추세가 완연한 가운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지식기반산업 시대가 열렸다. 지식기반산업 시대는 필연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가 집중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집중된다.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이는 결국 비수도권 지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지역 소멸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낡은 행정체제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방에도 서울에 버금가는 ‘메가폴리스’를 탄생시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과소 시군을 통합해 효율성을 끌어올리면 대한민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홍준현 중앙대 교수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현실로 다가온 현시점에서 우리 세대는 이제 미래 세대를 감안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 부울경, 대구경북…과거 하나였던 곳부터 합치라
2020년 감소 추세로 돌아선 대한민국 인구는 2052년에는 4600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비수도권 광역시 인구는 지금보다 25%가량 축소될 전망이다.
행정안전부 산하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미래위)는 현재 지방행정체제가 3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 만큼 광역 시도 간 통합을 통해 행정체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합을 권고할 수 있는 지역으로 과거엔 하나의 자치단체였다가 지금은 분리된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이 꼽힌다.
이 같은 통합이 이뤄지면 2023년 인구 기준 서울의 35~80% 수준에 달하는 초광역 자치단체가 탄생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부울경은 통합 인구가 765만명으로 서울(939만명)에 못지않다.
이에 대해 권역의 성장을 이끌기 위한 거점도시도 갖춰져야 한다. 거점도시 규모는 권역별로 인구 30만명 또는 50만명 이상이 거론된다.
미래위는 전북 전주시·완주군, 전북 익산시·군산시, 전남 순천시·여수시·광양시 등을 통합해 인구 50만명 이상 규모의 거점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전주시는 최근 완주군과의 통합과 관련해 “시내버스 노선을 증설하고 농촌 마을버스 요금을 기존 500원에서 100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구 30만명 규모의 거점도시로는 충남 서산시·당진시, 강원 강릉시·속초시·양양군 등이 거론됐다.
◆ 헌법에 지자체 자치권 강화 명시하라
과거 프랑스는 중앙정부 제약에서 지방이 벗어날 수 없다는 고민을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했었다. 고민 끝에 내린 해법은 ‘헌법 차원의 개혁’이었다.
프랑스는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국가 조직 원리로 규정하고 지방분권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는 2003년 개정헌법 제1조 제1항 후단에 ‘프랑스는 지방분권화된 조직을 갖는다’고 명시함으로써 지방분권의 법적 근거 기반을 기존 법률에서 헌법 차원으로 격상했다.
지방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프랑스 개정헌법은 자치재정권, 지자체 간 재정조정제도를 명시해 지자체에 행정권한과 재원을 모두 넘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교부금 등이 지방재정조정제도로 활용된다.
한국의 지방교부세 관련 심의·자문 기구인 지방교부세위원회는 법률이 아닌 시행규칙에 근거를 두고 있어 지자체가 의견을 제시하기 힘들고 중앙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프랑스는 법률에 근거해 지방재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중앙과 지방이 수평적 관계에서 논의한다.
오승규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재정연구실장은 “헌법에 명시되면 국회에 관련 입법 의무가 부여되고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는 특성이 생긴다”며 “우리도 재정분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자치재정권 및 지방재정조정제도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약한 지자체 재정자립도 개선도 필요하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2025년 기준 전국 평균 43.18%를 기록했다. 전국 시도 중 서울·경기·세종만이 50%를 웃돌았다.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곳은 전북으로 23.64%다. 서울의 한 구청장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금액이 400억원가량 줄어 기존 사업 예산을 일괄적으로 30%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담뱃세나 자동차세를 구세로 전환하는 등 자치단체 자립도를 높여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 인구소멸지역 통합으로 행정효율 높이라
과소 시군구 통합을 통해 지방의회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지방 곳곳이 소멸 위기에 놓인 반면, 오히려 지방의회 의원 수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행정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행안부에 따르면 2021년 전국 기초자치단체 243곳 가운데 89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5년에 한 번씩 지정하는데, 현재 추이를 감안하면 2026년 발표 때에는 인구감소지역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지방의회 의원 수는 증가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원 정수는 제7기(2014~2018년)에 3692명이었으나 제8기(2018~2022년)에는 3756명, 현재 진행 중인 제9기(2022~2026년)에는 3865명으로 지속해서 늘고 있다. 외유성 출장 논란 등으로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몸집이 커지기만 한다면 국가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전국 지방의회 의원 정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정쟁을 벌이는 여의도 중앙정치가 지방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국내 정치 특성상 지방 의원 수를 늘리는 것만큼은 최근 10여 년간 의견을 일치시켜온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구수, 선거구 조정 등을 고려해 정개특위에서 총정수를 결정할 수 있다”면서 “지역에서 의원 수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계속 있고 선거법에 의원 수를 인구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조정하는 조항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 정책도 통합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산후조리원 부족으로 고민하는 경북 안동시와 영양군은 지자체 간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영유아 보육시설을 겸비한 공공산후조리원을 건립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안동시와 영양군에 특별교부금 50억원을 지원했다. 두 곳 모두 단독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짓기에는 수요가 부족했는데,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 예산 확보와 주민 편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동현 전북대 교수는 “작은 단위 행정구역을 경쟁력 있는 규모로 재편하면 행정의 중복성을 줄여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지역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