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육성 시스템+디지털’ K콘텐츠 18년만에 수출 10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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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내공의 수출 히든카드 K컬처]〈3〉 美日에도 수출, ‘문화 대역전’ 시대
‘봉준호 전시회’에 美관람객 몰려
영화-드라마-뮤지컬 등 최고 인기
K아이돌 축적 노하우 日에 수출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등장한 한강 괴물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봉준호 전시회’는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로스앤젤레스=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등장한 한강 괴물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봉준호 전시회’는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로스앤젤레스=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아카데미 영화박물관에 있는 ‘디렉터스 인스피레이션: 봉준호’ 전시관은 평일 낮인데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등장한 괴물 모형과 봉 감독이 직접 스케치한 영화 ‘옥자’의 그림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었다. 또 봉 감독이 대학 시절 친구들과 활동했던 소모임 모집 포스터, 직접 그린 작품 콘티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대학생 라이언 로드리게스 씨(22)는 “예술 전공 학생이라 다양한 영감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봉 감독의 ‘기생충’을 재밌게 본 후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겨 이번 전시를 찾았다”고 말했다.

한때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한국이 이제 콘텐츠 생산과 확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가 세계 콘텐츠 산업에 영감을 주면서 ‘문화 수출 대역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 K팝 등 K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면서 일종의 역전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며 “한국 대중문화가 산업적 측면에서 높은 위상을 갖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 “韓 대중문화 산업적으로 높은 위상”

K콘텐츠의 위상 변화는 각종 실적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국의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한류 초기인 2005년 13억113만 달러에서 2015년 56억6137만 달러, 2023년 133억3941만 달러로 급증했다. 반면 수입액은 같은 기간 29억8589만 달러에서 11억8282만 달러, 8억9382만 달러로 감소했다.

글로벌 시상식에서도 K콘텐츠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영화 ‘기생충’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2022년 에미상에서 6관왕을 기록했다. 두 작품 모두 해당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주요 부문을 수상한 사례였다. K팝 아티스트 방탄소년단도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연속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국내 초연의 토종 뮤지컬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K팝은 단순히 ‘해외 떼창’ 열풍에 그치지 않고 K팝 육성 시스템이 해외로 전수되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소니뮤직과 함께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를 기획해 ‘칼군무’ 등 K팝식 트레이닝을 거친 일본인 걸그룹 니쥬(NiziU)를 데뷔시켰다.

지난달 9~11일 일본 도쿄 인근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케이콘 저팬 2025(KCON JAPAN 2025)’ 공연 현장. CJ ENM 제공

지난달 9~11일 일본 도쿄 인근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린 ‘케이콘 저팬 2025(KCON JAPAN 2025)’ 공연 현장. CJ ENM 제공
CJ ENM은 일본 요시모토고교(吉本興業)와의 합작사 라포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K팝 DNA’를 접목한 현지 아이돌 육성에 나섰다. 자체 음악 지식재산권(IP) 생태계 ‘MCS’를 기반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저팬’ 시리즈를 통해 JO1, INI, 미아이(ME:1) 등을 배출했다. 이들 중에는 K팝에 영감을 받아 성장한 현지 아티스트도 있었다. 지난달 11일 일본 지바현 ‘케이콘 저팬 2025(KCON JAPAN 2025)’에서 만난 미아이 멤버 이시이 란(21)은 “있지(ITZY) 류진 선배가 K팝 음악에 강하게 몰입해 파워풀한 춤을 추는 모습 영상을 보고 K팝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차별화된 K팝 정체성으로 승부

할리우드 본토인 미국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한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CJ ENM은 2022년 미국 기반 글로벌 스튜디오 ‘피프스시즌’을 약 9400억 원을 들여 인수하며 미국에서의 제작 기반을 확보했다. 지난달 11일 만난 크리스 라이스 피프스시즌 대표도 “한국, 일본 등 다양한 동양의 콘텐츠 제작사들과 협업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 이어진 축적된 투자와 시스템이 지금의 K팝 위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한국은 J팝에 열광하고 일본 연예기획사 ‘자니스 사무소’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의 본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수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하는 스타 육성 시스템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기에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가 ‘칼군무’ 등 한국만의 스타일을 접목하면서 차별화된 K팝만의 정체성도 구축됐다. 이런 기반 위에 각 세대 아티스트들의 경험과 성과도 차곡차곡 쌓였다. 임 평론가는 “1996년 H.O.T.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싸이, BTS, 블랙핑크에 이르기까지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쌓이면서 그 축적이 오늘의 성과를 이룩한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영상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작한 점도 경쟁력을 키운 요인으로 분석된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K팝은 뮤직비디오나 음악 방송에도 막대한 자본력을 투입해서 다이내믹한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CJ ENM 관계자는 “참신한 뮤직비디오, ‘프로듀스 101’ 시리즈와 같은 브랜딩, 경쟁력 있는 포맷이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계는 멀티플렉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상영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됐다. 제작부터 배급, 마케팅까지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영화 제작 구조도 한층 체계화됐다. 김 평론가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는 프랑스 등 유럽에서 마니아층 일부의 관심을 받긴 했지만, ‘저렴하고 나름 개성 있는 콘텐츠’ 정도로 인식됐다”며 “이후 대중문화 개방과 정보기술 발전, 막대한 자본 투입이 맞물리며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퍼지고 세계 시장을 단숨에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로스앤젤레스=이민아 기자 om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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