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 단위농협… 알고보니 ‘대포통장 발급 전국 2위’[히어로콘텐츠/히든②-下]

2 hours ago 4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
〈2〉 범죄 숙주가 된 제2금융권
감시망 피해 2금융권 파고들어
자산규모 시중은행 3분의 1인데
보이스피싱 통장 발급 수는 비슷
AI탐지 참여 늦어 3개월 적발 3건
농협중앙회 “현장실사 등 통제 강화”

인구가 3000명 남짓한 경남 거창군 거창면에 있는 거창축협 가조지점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범죄 기록에 12번 등재됐다. 가조지점에서 발급된 회사 대포통장 12개가 보이스피싱에 쓰인 것이다. 전국 4800여 개 단위농협 지점 중 2위다. 지난달 12일 찾은 가조지점의 고객은 대부분 노인들로, 송금 등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인구가 3000명 남짓한 경남 거창군 거창면에 있는 거창축협 가조지점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범죄 기록에 12번 등재됐다. 가조지점에서 발급된 회사 대포통장 12개가 보이스피싱에 쓰인 것이다. 전국 4800여 개 단위농협 지점 중 2위다. 지난달 12일 찾은 가조지점의 고객은 대부분 노인들로, 송금 등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저희 지점이 대포통장 발급 전국 2등이라고요?”

지난달 12일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거창축협 가조지점. 사정을 들은 관계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구 3394명의 농촌 마을, 직원 6명뿐인 작은 단위농협이다.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지켜봤더니 창구를 찾은 고객은 12명이 전부였다. 대부분 노년층으로 단순 송금이나 보험 문의였다. 회사 명의로 통장을 만들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 한적한 단위농협이 최근 5년 동안 12번 범죄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에 쓰인 대포통장을 모아 ‘채권소멸 사실 공고’라는 이름으로 공개한다. 잔액을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전에 소명받는 절차인데, 가조지점에서 발급한 회사 명의 통장 12개가 2021년 이후 이 목록에 올랐다. 전국 4800여 개 단위농협 지점 가운데 대구축산농협 대명역지점(13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다.

가조지점 관계자는 “전국 순위권인 줄 전혀 몰랐다”며 “지난해부터는 바깥 지역에 주소를 둔 회사의 통장 개설은 막고 있다”고 해명했다.

● 범죄가 옮겨간 곳, 작은 단위농협

최근 몇 년 새 대포통장 조직이 통장을 발급받는 은행이 급격히 제2금융권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대포통장 조직이 통장을 받아내는 은행은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2021년만 해도 보이스피싱에 쓰인 회사 대포통장 중 80.9%인 4584개는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발급됐다. 은행별로는 IBK기업은행이 1354개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이 다음이었다. 상위 5개 은행 가운데 제2금융권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제2금융권의 비중이 46.8%로 치솟았다. 통장 수로는 4년 만에 2.5배가 된 것.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자산은 모두 합쳐 2684조 원으로,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의 자산 합계(844조 원)의 3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보이스피싱에 쓰인 회사 대포통장은 5대 시중은행(2095개)과 단위농협·새마을금고(1969개)가 엇비슷했다. 덩치는 3분의 1인데 범죄에 동원된 통장 수는 맞먹은 셈이다.

특히 단위농협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단위농협에서 내준 회사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인 규모는 2021년엔 금융권 6위(8.9%)였지만 2024년엔 1위(18.9%)가 됐다. 지난해엔 비율이 21.3%로 더 높아졌다.5년간 단위농협의 개별 조합 가운데선 대구축산농협(44건)에서 만들어진 회사 대포통장이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명역지점에서만 13개가 쏟아졌다. 농협중앙회는 “문제가 된 시기엔 서류 등 요건만 맞으면 통장 개설을 거절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서 “최근에는 통장 개설 시 실사를 나가는 등 통제를 강화했다”고 했다.

● 허술한 통제… AI 탐지망 참여도 늦어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의 구조는 닮았다. 단위농협은 농협중앙회로부터 전반적인 관리와 감독을 받지만 전국 1110여 개의 개별 조합 하나하나가 각 지역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세워져 독자적으로 조합장을 선출한다. 여기서 운영하는 4800여 개 지점의 인사도 조합이 책임진다. 새마을금고 역시 유사하게 운영된다. 반면 제2금융권 중에서도 본사의 감시가 강한 증권사나 저축은행은 회사 명의 대포통장 발급이 연간 수십 개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두 상호금융회사의 내부통제는 제1금융권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1금융권의 시중은행은 본점이 이상 거래를 감시하고 일괄적으로 방어막을 친다. 반면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는 조합 하나하나가 독립된 회사다. 중앙회의 통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해 감시망이 느슨하다.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에도 유령 회사를 걸러낼 장치는 있다. 통장을 만든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고 영업하는지 직원이 현장에 나가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실사’다. 하지만 한 단위농협 지점의 관계자는 “실사는 나가지 않고 통장을 개설할 때 제출받은 회사 등기부등본 등 서류로 대체한다”고 했다.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에서 지난해 퇴직한 전직 전무(60)는 “대출 전엔 실사를 나가기도 하지만 통장을 만들 땐 그러지 않았다”면서 “실제로 영업하는지 일일이 조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출해 준 돈을 떼이면 은행에 손실이지만, 통장 개설은 고객의 돈을 추가로 맡아두는 일이라 까다로운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취지다.

제2금융권은 정부의 보이스피싱 대책 참여에도 소극적이다. 금융위원회 등은 지난해 10월 수많은 통장 가운데 보이스피싱 의심 통장을 인공지능(AI)으로 탐지하는 시스템 ‘ASAP’를 가동했다. 올 1월까지 약 130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ASAP로 잡아낸 통장은 총 2705개다. 그런데 그중 단위농협과 새마을금고가 적발한 건 3개에 그쳐, 그 비율이 0.001%였다. 제2금융권 중에서는 그나마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갖춘 증권사는 실적 비중(11.7%)이 컸다.

금융당국은 이달까지 제2금융권의 시스템 참여를 끌어내 반(反)보이스피싱 방어벽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단위농협의 대포통장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 작업을 벌여 최근에는 감소했다”고 했다.

하지만 쫓는 자보다 쫓기는 자가 한발 빨랐다. 당국이 방어벽을 한 겹 올리는 사이, 범죄 조직은 신고로 묶인 통장마저 되살리는 우회로를 이미 뚫어 놓은 뒤였다. 대포통장 조직이 법정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는 3회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은 각종 범죄의 핵심 도구인 대포통장 문제를 조명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취재: 임재혁 손준영 조승연 기자
▽사진: 박형기 기자
▽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기획: 김재희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및 영상: 정시은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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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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