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법원이 ‘행정적 오류’로 엘살바도르에 잘못 추방된 합법적 체류자를 즉시 귀국시키라고 명령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범죄자를 내쫓겠다”며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추진하고 있으나, 추방자 숫자를 늘리기 위한 ‘보여주기식’ 대응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미 백악관은 15일(현지 시간) 실수로 엘살바도르의 교도소로 추방된 합법 체류자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30)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재추방될 것이라며 “그가 (원 거주지) 메릴랜드주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 시나리오는 없다”고 일축했다. 레빗 대변인은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MS-13 갱단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달 4일 폴라 시니스 미 메릴랜드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당국의 추방 조치를 “전적으로 불법 행위”라고 판단하고 7일까지 그를 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명령했다. 법무부에서 가처분 신청을 내고 항소했지만, 10일 미 연방 대법원에서도 시니스 판사의 송환 명령을 우회적으로 지지하면서 정부가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귀국을 “촉진”할 것을 요구했다.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 결정으로 “미국은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엘살바도르로의 추방을 금지한 보호명령 대상자였음을 인정하고 추방이 불법이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아브레고 가르시아는 2011년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으로 불법 입국했다. 이후 2019년 미 시민권자와 결혼한 그는 망명 신청을 거쳐 합법적으로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거주해 왔고, 범죄 이력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지난달 15일 국제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 조직원 등으로 지목해 약 300명을 강제 추방하면서 그를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테러범 수용센터(CECOT)로 보내버렸다. 그의 가족들이 정부에 송환 명령을 내려달라고 소송을 낸 뒤 재판에서 정부가 ‘행정적 오류’로 추방됐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현실적으로 데려올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며 법원의 귀국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테러리스트”라 칭하며 미국에 보낼 수 없다는 입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시니스 판사는 다음 날 진행된 재판 청문회에서 “아브레고가 CECOT에 수감되어 있는 하루하루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라며 “시간 끌기 꼼수(gamesmanship)나 보여주기식 제스처(grandstanding)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법무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전과가 있는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추방 대상자의 전과 유무보다 ‘숫자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3일까지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된 이민자의 48.1%가 범죄 전력이 없었다며 일부는 문신이나 복장만으로도 단속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한편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 대응을 강조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자진해서 출국하는 “선한” 불법 이민자의 재입국을 돕겠다고 말하면서 정책 기조가 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15일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행정부가 “살인범”들을 미국 밖으로 내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다른 불법 입국자에 대해서는 “자진 추방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호텔과 농장들이 필요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게 돕고 싶다며 “자진 출국제를 이용하기 편하게 만들고, 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합법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추방이 불법 이민자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는 미국의 농업·서비스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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