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범죄인 인도를 요청받은 나라의 동의를 전제로 인도 전에 저지른 범죄도 추가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한국과 태국 간 범죄인인도조약 규정은 헌법에 합치된다고 결정했다. 헌재가 타국과의 범죄인인도조약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27일 A씨가 ‘대한민국과 타일랜드왕국 간 범죄인인도조약’ 16조 1항과 형법 39조 1항 등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문제가 된 범죄인인도조약 16조 1항은 범죄인 인도 대상이 된 범죄자는 ‘인도가 허용된 범죄’ 외에 다른 범죄를 이유로 구금, 기소 또는 심리되지 않는다는 원칙(특정성)을 규율한다. 다만 피청구국이 동의하는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이 사건 청구인인 A씨는 2006~2007년경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했다. 2008~2011년경 필리핀에서 추가로 범행해 2012년께 태국에서 체포됐다.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A씨는 2013년 10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3년간 국내로 임시 인도됐다.
A씨는 국내 교도소에 머무르는 동안 강도치상, 강도상해 등 혐의와 관련해 여러 건의 재판에서 무기징역 등 실형을 확정받았다. 이런 와중 이전에 드러나지 않았던 강도살인죄가 확인돼 추가로 기소됐고, 해당 범행에 대해서도 징역 12년이 확정(2020년 대법원 선고)됐다.
한국 정부는 강도살인죄와 관련해 A씨를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태국과의 범죄인인도조약 16조 1항상 예외를 적용했다. 이 조항에 따라 정부는 2017년께 태국 정부에 동의요청서를 보냈고, 태국 정부는 이에 동의하며 A씨를 ‘임시 인도’ 상태에서 ‘최종 인도’ 상태로 전환했다.
A씨는 범죄인인도조약 16조 1항이 허용하는 예외가 위헌이라며 2020년 6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5년간의 심리 끝에 해당 규정이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A씨의 주장대로 청구국이 피청구국에게 범죄인 인도 동의 요청을 할 때마다 인도된 범죄인에게 고지하고, 의견 및 자료 제출의 기회 등을 부여해야 한다면 피청구국의 동의를 확보할 때까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소요돼 추가 범죄에 대한 처벌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청구국이 형사사법 운용의 효율성 제고, 사법 정의의 실현 등 목적을 달성하는 데 커다란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도된 범죄인의 추가 처벌을 위해 피청구국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 해당 조항이 “형사사법의 정의 구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특정성의 원칙 위반 여부는 형사재판에서 다투면 된다는 대법원 판결(2005도5822)을 들면서 “절차적·실체적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A씨는 ‘경합범 중 판결받지 않은 죄가 있는 때에는 그 죄와 판결이 확정된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해 그 죄에 대해 형을 선고한다. 이 경우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형법 39조의 위헌 여부도 가려달라고 했다. ‘형의 감경 또는 면제’ 부분이 판사의 재량을 인정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헌재는 “조항의 문언이 가진 통상 의미와 사용례, 입법 목적, 관련 법 규범의 체계, 법관의 보충적 가치 판단 등을 통해 이 조항의 구체적 의미와 적용 기준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며 A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