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에 대해 학계와 산업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 부족과 사회적 낙인, 국제통상 분쟁 가능성을 지적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서울 중구 CKL기업지원센터에서 한국정책학회와 공동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 디그라 한국학회장을 맡고 있는 윤태진 연세대 교수는 “게임이 질병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라며 '즐거움'이라는 문화적 속성을 지닌 매체를 질병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텔레비전, 만화, 영화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된 억압 구조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게임 역시 '건강 담론'을 앞세운 의료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의료화가 콘텐츠 규제의 핵심 기제로 작용하면서 생존과 건강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다른 가치를 고려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로인해 정작 사회구조의 문제는 경시되고 개인의 즐거움이 가진 중요성과 가치 또한 비가시화되고 있다고 봤다.
박정호 상명대 교수는 “WHO의 국제질병분류(ICD-11)상 게임이용장애는 권고사항일 뿐으로 아직 명확한 과학적 근거와 합의가 부족한 상태”라며 “국제 규범을 무조건 국내에 여과 없이 적용하면 사회적 낙인과 과잉 규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보다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5년간의 게임이용자 종단연구 결과도 소개됐다. 연구를 맡은 조문석 한성대 교수는 “게임 과몰입군이 5년 연속 유지된 사례는 없었고 문제적 행동은 대부분 의료 개입 없이 자연 해소됐다”며 “게임을 원인으로 단정하기보다, 심리·사회적 요인의 복합적 결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은 ICD-11 질병코드를 국내 KCD에 도입할 경우 법적·통상적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김 센터장은 “미국, 일본 등 비채택국들이 WTO, FTA, TBT 등 국제협정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이 경우 한국은 K콘텐츠 외교 전략과 상충되는 주장을 국제사회에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헌법상 표현의 자유, 문화국가원리, 산업진흥정책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정책 결정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유현석 콘진원 원장직무대행은 “게임은 세계 4위 산업 규모를 자랑하며 청년 일자리와 수출을 견인하는 국가 전략 산업”이라며 “콘진원은 게임 질병코드 문제에 대해 과학적 데이터와 객관적 연구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