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제언
환자들은 평생 크고 작은 출혈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생명을 위협하는 뇌출혈과 반복적인 관절 출혈로 인해 심각한 합병증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혈우병 환자의 90% 이상은 관절 손상과 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부족한 응고인자를 정기적으로 보충하는 예방 요법이 현재 치료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환자가 2∼3일 간격으로 자가 주사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혈우병 치료 환경의 의미 있는 발전
지난 몇 년간 국내 혈우병 치료 환경은 환자 중심으로 꾸준히 개선돼 왔다.대표적으로 2019년 처방 기준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환자의 경우 4주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한 달 치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의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환자별 약물 소실 속도를 분석하는 약동학(PK) 검사가 도입되면서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예방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와 보건당국이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온 결과이며 의료 현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이제는 ‘충분한 치료’를 논의할 시점다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 혈우병 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사항상 환자의 상태와 활동량에 따라 의료진이 적절한 용량을 조절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일부 치료제에서 허가 범위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돼 있어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용량을 충분히 처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의학적으로는 100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급여 기준상 60만 인정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고셔병, 파브리병 등 다른 희귀질환 치료제는 허가 용량과 건강보험 급여 인정 범위가 일치한다. 그러나 혈우병 치료제는 별도의 제한이 적용되고 있어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측면의 논의가 필요하다.
혈우병 치료 역시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치료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검토가 요구된다.국제 기준은 더욱 적극적인 예방 치료로 변화
세계혈우연맹(WFH)을 비롯한 국제 의학계는 단순히 생명을 위협하는 출혈을 막는 수준을 넘어 관절 건강과 삶의 질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세계혈우연맹 가이드라인을 비롯한 글로벌 표준은 환자의 응고인자 수치를 기존 최소 수준인 1%가 아닌 3∼5%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환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관절 내 미세 출혈까지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 역시 환자 상태와 활동량에 따른 충분한 예방 치료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는 혈우병 환자들이 운동, 학업, 직장 생활 등 일상생활을 더욱 자유롭게 영위하도록 하기 위한 방향성이다.예방 치료는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
충분한 예방 치료는 환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예방 치료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반복적인 출혈과 미세 출혈이 누적돼 혈우병성 관절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보행장애, 인공관절 수술, 장기 입원 및 재활치료 등 추가 의료비 증가의 원인이 된다.
반대로 적절한 예방 치료를 통해 관절 건강을 유지하면 장애 발생을 줄이고 학업과 경제활동 참여를 높일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초기 약제비 부담이 일부 증가하더라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수술·입원·재활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국가 의료 재정 측면에서도 효과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다.
환자 중심 치료 환경으로 한 걸음 더
그동안 정부와 보건당국은 혈우병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왔다. 이제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환자들이 의학적 필요에 따라 충분한 예방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치료제의 보험급여 기준이 허가 사항과 합리적인 정합성을 갖도록 정책적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혈우병 환자들도 다른 희귀질환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에 대한 걱정 없이 학업과 근로,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혈우병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출혈을 막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돕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혈우재단 서울의원 구홍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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