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 불참 선언으로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빅4’로 꼽힌 두 사람의 불참은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 기대 수준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고 바람이다. 보수 후보 단일화 등 여러 변수가 있어 최종 결과는 알 수 없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이 경선을 거치며 이른바 ‘노풍’(노무현 바람)으로 ‘이회창 대세론’을 잠재운 사례도 있다.
다만 국민의힘 후보들 출사표를 보면 정권 교체론을 뒤집을 만한 호소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일찌감치 저 앞에서 뛰고 있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달리 국민의힘 주자들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함부로 나서지 못한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간의 무능과 특유의 웰빙 체질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패배 직후부터 ‘100년 정당’을 외치면서 칼을 갈았다. 계엄령 선포 이전부터 집권플랜본부를 가동하는 등 착착 차기를 준비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이후 패거리 정치에 함몰되면서 당 기능이 멈췄다. 선거 승리 정당이 3년간 비상대책위원회를 네 번 가동한 게 말이 되나. 대표 체제가 두 번 들어섰지만 몇 개월 버티지 못했다. 정당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러려면 펄펄 살아 숨 쉬어야 하고 인재 순환이 활발해야 한다. 배제 정치를 하다보니 차세대 주자를 키우지 못했다. 그 결과 후보들의 참신성이 떨어지고 여전히 법조인, 영남에 갇혀 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자생이 아닌 외부 차출론이 힘을 받는 것은 죽은 정당이나 마찬가지다.
후보들 출마 선언문 전문을 읽어봐도 실망스럽다. 후보마다 빠지지 않은 메뉴는 ‘반(反)이재명’이다. ‘이재명과 싸워 이길 사람’ ‘이재명 심판’ 등 끝이 없다. 어떤 후보는 출마 회견에서 ‘이재명’을 열 번 가까이 언급했다. 국민의힘으로서 반이재명은 ‘갈등 구도 만들기’ 대선 전략에 들어맞는 유효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필요충분’을 갖추고 ‘+α’를 보여줘야 하는 게 대선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뚜렷이 드러내 회고적 투표가 아닌 전망적 투표로 끌어가야 한다. 물론 국민의힘 후보들 출사표에도 비전, 포부가 들어 있지만 이 전 대표와 민주당 비판이 맨 앞을 차지하다보니 희석돼 버렸고, 그 내용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 3년 내내 한국 정치를 후퇴시킨 ‘윤석열 대 이재명’식의 투쟁 2라운드로서 얼마나 호소력이 있겠나.
또 하나 아쉬운 것은 보수 정당으로서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정체성은 정당의 존재 이유다. 보수 가치는 작은 정부,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시장경제, 법치주의, 자기 책임과 절제 있는 권리 행사, 사유 재산권 존중 등이다. 헌법 정신에 담긴 큰 줄기이기도 하다. 세세한 것은 공약에 담더라도 출마 선언문엔 보수당다운 가치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일부 후보만 ‘자유민주주의 가치 존중’ ‘자유와 창의를 중심으로 정부 개입 최소화’ 정도로 지나갔다. 성장 얘기는 드물고 시장경제 중시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성장보다 채무 탕감 등 퍼주기가 더 눈에 띈다. 안보 얘기도 드물긴 마찬가지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은 성장 중시 중도 보수 정당’을 표방하며 국민의힘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모방에서 주도로 성장 패러다임 전환’ ‘국부(國富)는 기업이 창출’ ‘인공지능(AI) 투자 100조원’ 등 연일 경제 화두를 던지며 현장을 찾고 있다. 포퓰리즘적이고, 정부 주도의 문제점이 있으며, 선거용 수사(修辭)일 수 있지만 짧은 출마 영상과 비전 레토릭은 국민의힘 후보들이 바짝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임을 자임한다면 그 가치의 토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기조 아래 하향하는 성장률, 관세 전쟁, 안보 등 당면 과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과 해법을 제시해야 국민 지지를 바라볼 수 있다. 국민의힘이 초장부터 주 4.5일 근무제를 공약으로 내놨는데, 선거 때만 되면 보수당마저 반시장 경쟁에 뛰어들어서는 존재 가치가 없다. 선거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더 확고히 하는 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나아가기 어렵다. 물론 여기엔 민주당도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