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학생 14명은 “수업 거부로 제적 예정 통보를 받은 3학년 선배의 방해와 협박으로 수업과 시험 참여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교가 학칙대로 선배들을 제적하지 않으면 학교와 선배를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의 3학년 학생들은 2학년 후배들을 불러내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 못하게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블랙리스트” 운운하며 수업 거부를 강요했다고 한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거부해야 자신들도 제적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교육부에는 수업 복귀 방해를 막아 달라는 의대생과 학부모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한 국립대 의대는 강경파 학생들이 간담회를 열어 수업 거부를 압박했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을지대 의대는 학생들에게 수업 참여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함으로써 수업 거부를 겁박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을지대는 주동자 2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수업 거부를 강요하거나 복귀 의대생 신상을 유포해 교육부가 의대생 수사를 의뢰한 사건이 18건이나 된다.
▷선배와 동료의 수업 거부 강요는 의대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까지 10년 넘게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동고동락하고 졸업 후에도 평판이 중요한 집단 내에서 ‘배신자’로 찍히는 건 제적이나 면허 정지보다 무서운 일이라고 한다. 지난달엔 집단행동을 거부한 의사와 의대생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유포한 사직 전공의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부당한 정책에 반대한다는 명분이라지만 비동조자에 대한 조리돌림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정부가 의대 증원을 철회한 후로도 집단적 수업 거부로 의대생 40%가 유급이나 제적 예정 통보를 받았고, 나머지 60% 중 상당수도 한 과목만 수강하는 등 수업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내년에 3개 학년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을 완화하려면 이번 달 안에라도 복귀해 다음 달부터 계절학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후배가 선배 제적을 요구할 지경이 되도록 학교와 정부는 무얼 한 건가. 정부는 학생들이 안심하고 복귀할 수 있게 현장을 챙기고, 의료계도 후배들의 수업 복귀를 독려하는 한편 이탈자를 매장해 버리는 비민주적인 집단문화를 돌아보기 바란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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