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줄인 단어로, 음식이 됐든 옷이 됐든 화장품이 됐든 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선의 소비를 하려는 마음이 담긴 표현이다.
우리는 비단 소비뿐 아니라 삶의 모든 면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가장 빠른 지름길,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주식 종목,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커리어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다. 그만큼 '최적화'의 욕구는 우리 사고방식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최적화라는 환상>은 '최적화'라는 원칙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 코코 크럼은 미국의 응용 수학자다.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고, 과학 컨설팅 업체 '리워드 코 (Leeward Co)'의 창업자다. 세계 최고의 테크 기업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식을 찾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테크 업계의 효율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환멸을 느끼며 '최적화'의 폐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책은 '최적화'가 인류 발전을 이끈 원리를 설명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더 높은 생산량, 더 많은 돈,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욕구는 인류 성장의 강력한 동기가 됐다. 덕분에 과학 기술, 경제 시스템, 산업 모두 숨 가쁜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는 농업, 경제, 에너지, 카지노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최적화'가 절대적인 원칙이자 하나의 시대정신이 됐다.
저자는 최적화의 추구가 인류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동시에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들을 지적한다. 인류가 눈앞의 최적화에 집착하면서 사회는 유연성과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게 크럼의 주장이다. 책은 이 모습을 '폐허 위에 지어진 도시'에 비유한다. 생산량이 좋은 품종만 심으면서 농작물은 병충해에 취약해졌다.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수준으로 풍요로워졌지만 경제 시스템은 더욱 위태로워져 작은 위기에도 세계 경제가 휘청인다.
저자는 최적화를 향한 집착이 사회 구성원까지 옥죈다고 꼬집는다. 사회가 더 폐쇄적이고 일관적으로 바뀌고 통제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적화가 "개인의 행동을 체계화"한다며 "더 빨리 가고, 더 많이 집어넣고, 돈을 절약하고, 퇴직금을 모으고, 생산성을 높이고,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적 관행의 집합"이라고 비판한다.
모두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최적화'에 대한 관점을 뒤집는 책. 농업, 산업, 경제 같은 거시적인 역사뿐 아니라 독자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최적화의 폐해를 들추는 문제의식이 강점이다. 효율성과 최적의 결과에 대한 집착이 세상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와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풍부한 예시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점은 장점이다. 반면 지나치게 많은 예시가 글의 흐름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근대 과학 발전사와 뉴턴의 업적을 소개하며 뉴턴에 대해 "서번트 증후군 특성을 보이는 경증 자폐인"으로 표현하고, "날이 갈수록 살이 붙었고, '노망'이 났다는 일부 기록도 있다"처럼 불필요하게 구체적이고 주제에서 벗어난 정보까지 담겼다. 하나의 주장을 펼치다가도 잠시 관련된 일화로 샜다 본론으로 돌아오는 서술 방식도 독자의 집중을 흐린다.
예시는 구체적이지만 주제를 펼칠 때는 표현이 장황하다. 저자는 "이야기나 메타포처럼 모델도 현실을 형상으로 빚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빚어진 현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형성하고, 그대로 굳어 선택된 틀을 강화한다" 같이 추상적인 문장을 펼친다. 핵심은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데에 반해 예시는 지나치게 세부적이어서 주장과 근거를 쉽게 연결 짓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질서와 성장이 끝나가고, 권위주의가 발흥하고, 암흑기 또는 기후 재앙의 서막이 올랐다. 종말의 감각이 깨어나고 있다"처럼 과장된 서술도 저자가 펼치는 주장의 객관성을 낮추는 요소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