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명문학교엔 세가지가 없었다…왕따·촌지 그리고 우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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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0년 명문학교엔 세가지가 없었다…왕따·촌지 그리고 우열반 설립 120년 중동학원 김대유 이사장2018년 원익그룹 재단 맡아매년 10억원 교육·시설 투자휴게실 늘리고 예술 수업하니학생들 학업에도 한층 몰입 김대유 이사장. [한주형 기자] 1906년 관립한어학교 교실을 빌려 야학으로 출발한 중동학교가 1915년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을 때 한 수학 교사가 나섰다. 수학 방정식 등 대수(代數·Algebra) 과목을 잘 가르쳐 ‘최대수’로 불렸던 고(故) 백농 최규동 선생이었다. 그간 중동학교는 국가 소유 건물을 무상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건물을 일본인에게 매각하면서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폐교에 끝까지 반대한 최 선생은 부채 300원, 학생 24명과 함께 학교를 맡았다. 다른 학교에서 강의해 번 돈으로 임차료를 내고 운영비를 보탰다. 중동이 그를 실질적 설립자로 기리는 이유다.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은 중동학교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김대유 중동학원 이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한 인물도 최 선생이었다. 이후에도 학교는 여러 번의 재정난과 재단 교체를 겪었다. 이런 부침 속에서도 학교가 120년을 이어온 비결로 김 이사장은 교사들의 실력과 책임감, 동문들의 결속, 시대에 맞춰 발전시켜온 교육 전통을 꼽았다.오는 24일 8년간의 임기를 마치는 김 이사장은 중동고 63회 졸업생이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18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과 통계청장,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지냈다. 1994년부터 중동학원 운영에 참여했던 삼성이 물러난 뒤 원익그룹이 학교 재단을 맡은 2018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용한 원익 회장은 중동 출신이다.당시 시급한 과제는 학교를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재단 교체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불안이 컸고 동문들과 재단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다. 김 이사장은 “삼성이 떠난 후에도 학교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다”며 “어느덧 8년이 지나고 보니 과도기를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원익은 학교에 매년 10억원 안팎을 지원하고 시설에도 투자했다. 김 이사장은 자율형사립고도 수업료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만큼 재단이 꾸준히 지원해야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교육에 바라는 덕목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최 선생이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의로움을 강조했다면, 삼성은 국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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