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14일 서울대교수회는 ‘대한민국 교육개혁 제안’을 내놨다. 눈에 띈 내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년에 3, 4회 실시해야 한다는 것. 겉보기에는 학생의 응시 기회를 늘려 수능 부담을 줄이는 제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초·중등 교육과정을 시험 중심으로 회귀시키는, 미래 교육의 본질과 배치되는 제안이다. 학생 개개인의 재능에 맞는 성장을 돕는 교육이 아닌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로 아이들을 다시 무한경쟁의 늪에 빠뜨릴 것인가.
학생들이 수능을 여러 번 보면 어떻게 될까? 시험 준비 주기가 짧아지면서 모든 학교 교육은 시험에 맞춰지게 된다. 다음 수능을 염두에 둔 파행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는 탐구 기반 프로젝트 학습, 토의·토론 학습 등 고차원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을 함양하는 역량 중심 수업을 위축시킨다. 고교학점제를 통한 다양하고 풍부한 수업은 수능 중심의 정답 맞히기식 수업으로 회귀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교육이다.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떤 학생은 반복적인 시험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은 반복된 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교육은 확대되고 교육 격차는 더욱 커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수능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대학별 입시전형은 더욱 복잡해진다. 대학마다의 고득점 또는 평균점 반영 방식에 대한 공정성과 실효성 논란도 예상된다. 수능을 실제로 운영하는 학교 현장은 어떤가? 연 3, 4회의 영어 듣기평가를 포함해 수능을 운영해야 하는 행정적인 부담은 고스란히 학교와 교사들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지금은 과잉 경쟁과 과잉 변별을 초래하는 수능을 늘려야 할 때가 아니다. 학교 수업 속에서 학생들의 종합적인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고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수능의 횟수 증가 제안 이전에 ‘어떻게 하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우리 아이들이 갖출 수 있을지’ 학생 중심의 논의가 먼저다.
서울대교수회에 묻고 싶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입이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반복된 시험이 과연 최상의 대안인지,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이 사회에 나올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대학은 사회적 책무성을 가지고 건학이념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 20여 명과의 면담 자리에서 ‘교실 속 자존감’의 저자로 유명한 조세핀 김 교수를 만났다. 초등 2학년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다. 사회가 급격히 성장하고 세계화되는 시점에 대입 개혁, 공교육의 확장 등 교육의 본질에 직면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경기교육의 용감한 도전에 ‘감동적이고 감사하다’라고 한 김 교수의 말은 아직도 마음 깊숙이 콕 박혀 있다.서울대교수회와 머리를 맞대고 대입제도 개혁을 비롯해 학생을 중심에 둔 미래교육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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